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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반한 한국 <55> 중국인 한샹지의 인천국제공항 파견근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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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이 내리는 시간. 한복 저고리의 우아한 곡선미를 닮은 인천국제공항 건물이 은은한 불빛을 머금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이거, 붙이세요.” 비행기가 이륙한 뒤 어여쁜 한국인 승무원이 생긋 웃으면서 뭔가를 건넸다. 상처에 바르는 연고와 밴드였다. 전날 베여 상처가 난 내 손을 보고 알아서 센스를 발휘한 것이었다. 사소하지만 고마운 배려에 나는 감동하고 말았다. 첫 해외 출장에 긴장했던 내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졌다. 2006년 내가 처음 한국을 찾은 날의 일이었다.

컨설팅 회사에 다니던 나는 그로부터 2년 뒤 사직서를 냈다. 동경하던 항공사에 취직하기 위해서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나는 내게 친절을 베푼 그 한국 항공사에 거짓말처럼 취직하게 됐다. 입사한 뒤로는 쭉 항공사 중국 지점에서 직원 서비스 교육을 맡았다. 그러다가 올 초 운 좋게도 인천국제공항(이하 인천공항) 지점에서 6개월간 근무할 기회를 얻었다. 인생사의 오묘함이 새삼스레 실감났다.

인천공항에서 나의 업무는 환승 공항을 이용하는 승객의 편의를 현장에서 살피는 일이었다. 인천공항은 7년 연속 세계 최고 공항으로 선정된 곳이 아니던가. 짧다면 짧은 파견 근무 기간 동안 나는 인천공항의 명성을 맨눈으로 십분 확인할 수 있었다.

인천공항에서의 하루하루는 새롭고도 경이로웠다. 인천공항 이용객은 하루에도 10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도 출입국 심사대와 환승 시스템은 언제나 아무런 문제 없이 원활하게 돌아갔다. 라운지·면세점·편의시설도 다채로워 요령껏 활용하면 지루할 틈이 없다.

언젠가 가족여행을 떠났을 때다. 인천공항에서 환승을 하게 됐는데 연로한 부모님은 금세 지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일곱 살짜리 조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공항 곳곳을 천방지축 뛰어다녔다.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는 아직도 한참이 남은 상황. 이러다 이산가족이 되겠다 싶어 나는 가족을 이끌고 여객터미널 4층으로 향했다. 먼저 부모님이 환승 호텔에서 잠시 쉴 수 있도록 ‘데이 유즈(Day Use)’로 호텔 객실을 잡아드리고,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로 조카를 데려가 함께 놀아줬다. 그동안 언니 부부는 면세점에서 쇼핑을 즐겼다. 온 가족이 만족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여객터미널 3층에 있는 전통문화체험관은 한국 전통 음악을 음미하며 전통 공예품도 만들어 볼 수 있다.

인천공항을 거쳐 수차례 한국을 드나들다 보니 나만의 공항 이용법도 생겼다. 비행기 환승이나 탑승 전 짬이 나면 나는 제일 먼저 여객터미널 3층에 있는 ‘전통문화체험관’으로 향한다. 전통문화체험관은 인천공항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데, 외국인을 위한 무료 체험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 한가롭게 한국 전통 음악을 들으며 전통 공예품을 만들어 갖고 갈 수도 있다. 얼마 전 나는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중국에 가는 길에 이곳에 들렀다. 한국 전통 문양과 결혼 축하 메시지를 새겨넣은 자그마한 나무 공예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 만든 공예품을 결혼식 선물로 줬다. 친구가 무척 기뻐했다.

여객터미널 4층에 있는‘전통공예전시관’도 빼놓을 수 없는 나만의 아지트다. 한국의 옛 정서에 푹 빠질 수 있는 이곳에서 나는 종종 혼자만의 시간여행을 즐기곤 한다. 오래된 도자기와 농기구, 의복에서 나는 시대를 초월해 살아 숨쉬는 한국인의 지혜와 심미안을 가슴 깊이 새겨 넣는다.

다리가 아파올 즈음이면, 나는 4층의 휴식공간으로 향한다. 오랜 비행을 마치고 환승을 기다릴 때면 24시간 운영되는 샤워실에서 마디마디 찌든 피로를 말끔히 씻어낸다. 전 세계 어느 공항을 가도 인천공항처럼 쾌적한 샤워시설을 공짜로 제공하는 곳은 드물다. 때로는 샤워실 옆 마사지 숍에서 지친 몸을 달래주기도 한다. 1만원 남짓이면 마사지사의 야무진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심신을 재충전한 다음에는 면세점에서 필요한 물품을 산 뒤 비행기에 오른다. 이 순간, ‘쉼표’를 제대로 찍은 여행자의 마음은 양팔 가득한 쇼핑백만큼이나 풍요로워진다.

지난 6월 나는 파견근무를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좋은 인연은 ‘묘불가언(妙不可言)’이라 했다. 좋은 걸 말로 이루 다 표현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외국인으로서 인천공항에서 머무른 반년은 언제까지나 내게 묘불가언의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언젠가 한국을 다시 찾는 날까지 그곳에서 스친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정리=나원정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 기획

한샹지(韓香子)

1983년 중국 출생. 2006년 처음 한국에 다녀갔다. 2년 뒤 대한항공에 취직해 베이징 공항지점에서 서비스 강사로 일하다 올 초부터 인천공항 환승여객팀에서 6개월간 파견 근무를 했다. 지난달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인천공항을 그리워하는 중이다. 한국과 한국의 서비스 문화에 관심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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