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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65%가 현금서비스… 연체율 높아지면 휘청

중앙일보

입력

얼마전 여신금융전문협회는 10쪽짜리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돌렸다. 언론이 '카드사들 돈방석에 앉았다'고 연일 비판한 데 대한 대응조치였다. 물로 신용카드사가 지난 한 해 불황 속에 호황을 누린 것은 분명하다. 수천억원의 매출실적을 올리고 납부한 세액도 사상 최대 규모였다. LG·삼성 등 주요 카드사 직원들은 8백%가 넘는 성과급을 받았다. 카드사들 스스로 “지난 한 해 동안 장사를 잘한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놓을 정도다. 다만 문제는 어떻게 돈을 벌었느냐다. 카드사의 ‘가계부’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국내 신용카드사들은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수익의 절반 이상을 현금서비스 수수료에 의존하고 있다.

신용카드사는 알다시피 돈을 빌려주는 소매금융이 주력은 아니다. 카드 본연의 기능도 물론 아니다. 그러나 한국 신용카드사들은 지난해 현금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방식으로 돈방석에 앉았다. 현금서비스는 전체 사용금액의 평균 65%를 차지한다. LG나 삼성은 거의 70%에 이른다. 엄청난 규모다. 사용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수익 몫도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다.

방유철 국민카드 홍보팀 대리는 “현금서비스 수수료가 영업이익의 40∼50%는 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카드사의 또 다른 수익원으로는 카드론이 15%, 할부수수료와 가맹점 수수료에서 챙기는 이익이 각각 10∼20% 정도 된다. 돈을 꿔주고 이자 차익을 남기는 비율이 현금 서비스와 카드론 합쳐 50∼60%에 이르는 셈이 된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현금서비스 자체가 미미한 점에 비춰 보면 확실히 기형적인 수익구조다.

강애현 마스터카드 홍보팀장은 “사용금액의 일정 부문을 갚고 나머지에 대해 이자를 무는 리볼빙이 전체 수입원의 80∼9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국내 카드사들이 회원 확장을 위해 경쟁적으로 없애고 있는 연회비의 수익비율도 10%나 된다. 한국 카드사와는 정반대다.

현금서비스 금리는 한국이 24∼28%로 일본(27.8∼29.6%)과는 비슷하지만 미국(17.5∼22.5%)에 비해서는 높다. 카드사들이 여론의 잇따른 압력에도 불구하고 최대 수입원인 현금서비스 수수료율을 내리지 않고 있는 이유다. 물론 요즘 조달금리가 5∼6%대로 떨어졌기 때문에 금리인하의 여지는 사실 많아졌다. 수수료율을 늦게 내리면 내릴수록 카드사로서는 이득이 된다. 그러나 한국 카드사의 수익구조는 언제라도 허물어질 수 있는 취약성을 지닌다. 바로 높은 연체율이 문제다. 연체에서 이득이 남지만 악성연체는 곧바로 불량채권으로 이어져 위험하다.

이현철 외환카드 홍보과장은 “연체율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4∼5%에 머물렀지만 올해 들어서는 상황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경기가 급격히 악화되며 덩달아 연체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3분기까지만 해도 4.88%에 머물렀던 연체율이 지난 연말에는 5.18%로 높아졌다. 실직자가 늘고 경기가 급속히 가라앉은 올 1,2월 연체율은 이미 평균 6%대로 추정된다. 고영호 삼성카드 홍보과장은 “연체율이 1% 늘어나면 적어도 1백억∼2백억원가량 손실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카드사들이 지난 한 해 벌어들인 수익은 언제라도 바닥을 드러낼 개연성이 많다는 얘기다. 지난해 수천억원의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안정적인 조달금리와 낮은 연체율 덕분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8년 연체 비율은 무려 20.25%로 살인적인 수준을 보이면서 카드사들의 수익구조는 몹시 허약했다.

황명희 여전협회 홍보과장은 “지난해 수천억원씩 매출을 올린 카드사들이 상당액을 대손충당금으로 남겨 둔 것도 이런 사정을 고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업무처리에 드는 비용부담도 카드사의 속을 멍들게 하는 요소다. 카드사의 외형은 일단 사용건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늘어나게 된다. 카드사들은 지난 한 해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외형을 평균 2배 이상으로 늘렸다.

문제는 사용건수가 아니라 사용액의 규모다. 국민카드사 홍보실의 송호영씨는 “카드사가 수익을 조금이라도 남기려면 건당 사용액이 적어도 5만원은 넘어야 된다”고 설명했다. 가령 카드회원이 5만원을 사용했을 경우 평균 1천2백∼1천3백원 정도가 매출로 기록된다. 그러나 금융비용 6백원, 승인 수수료 1백원, 매출접수 대행료 1백원 여기에다 인건비와 대손금액 4백원을 제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몇 십원 정도 남짓이다.

국세청 영수증 복권제 실시 이후 1만원 소액 결제도 많아져 수익구조는 더욱 나빠졌다. 이명호 비씨카드 홍보과장은 “회원-가맹점-밴(VAN)사-카드사-은행 등으로 이어지는 업무처리 비용이 만만찮게 들기 때문에 소액 결제는 결국 손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카드사들의 이런 취약한 재무구조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공정거래위는 최근 7개 카드사의 불공정거래행위를 적발해 80여억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자금조달금리가 내렸는데도 각종 수수료율을 98년 이후 그대로 유지해 온 것을 문제 삼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해 가계대출금리는 9.48%에 지나지 않았으나 비씨, LG, 삼성카드 등의 현금서비스 금리는 23.56∼28.16%였다. 수치상으로 거의 2∼3배나 차이가 난다. 당기순이익은 2년 전과 비교해 비씨 4.9배, LG 9.9배, 삼성이 33.3배나 증가했다. 놀라운 증가다.

오성환 공정위 독점국장 말대로 “배부른 장사를 한 것”은 확실하다. 김승보 녹색소비자연대 사무처장은 “카드사들이야말로 가만히 앉아 떼돈 버는 고리대금 업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혹평했다.

카드사들이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좀처럼 수수료율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LG와 삼성이 합치면 시장점유율이 35.8%쯤 된다. 전체 카드시장에서 보면 50%는 넘지 않는다. 그러나 비씨카드 12개 은행 회원사를 보태면 70%를 웃돈다. 공정위는 물론 비씨카드사와 회원사의 영업상 관계를 무시하고 시장점유율을 정했지만 3개사의 시장지배력이 공고한 것만은 틀림없다. 시장지배력을 통한 수익 확대는 카드사에게는 매력적인 영업전략이지만 서비스 부실과 금전상 부담을 져야 하는 회원들로서는 참기 어렵다.

이완수 / 내외경제신문 소비자팀 기자 wslee@n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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