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KAL기 폭파 때 김현희 조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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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고가 발생한 직후 미국 정부가 한국정부의 협조를 얻어 미 중앙정보국(CIA) 과학기술부서 소속 외국방송 정보분석기관(FBIS)으로 하여금 김현희를 조사하게 해 북한의 소행임을 확신했다는 외교문서가 공개됐다. 115명의 사망자를 낸 KAL 폭파사고는 87년11월29일 발생했다.

미 국무부가 지난 6월11일 비밀을 해제한 외교 기밀문서들에 따르면 KAL 폭파사고가 일어난 지 40여일 뒤인 1988년 2월 당시 제임스 릴리 주한미대사는 워싱턴 국무부 본부에 보낸 외교 전문에서 이같이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릴리 대사가 보낸 전문에 따르면 FBIS는 사고 직후 한국 정부의 협조를 얻어 김현희를 면담할 수 있었는데, FBIS가 88월 1월15일 보내온 김현희 관련 음성 분석 보고서에는 “김현희가 북한 사람”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박수길 당시 외교부 차관은 88년 1월15일 릴리 대사에게 한국 정부의 수사 상황을 비공개로 브리핑했다. 이 자리에서 박 전 차관은 “김현희가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87년부터 1년간 테러 훈련을 받았으며, 사건을 일으키기 한 달 전부터는 김정일의 직접 지시로 폭탄 다루는 법을 집중적으로 배웠다”며 “김정일의 친필 편지도 받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릴리 대사는 88년 1월 워싱턴에 보낸 외교 전문에서 “김현희가 처음 조사받을 때는 중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사용하면서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중국사람 흉내를 냈다”며 “하지만 조사를 시작한 지 닷새가 되자 자신의 침대를 북한 특수부대 요원처럼 정리한 게 발견됐다”고 밝혔다.
릴리 대사는 갾결국 조사를 시작한 지 8일 만인 87년 12월23일 오후 5시 김현희가 여자수사관에게 한국말로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입을 열었다갿고 보고했다.

주한미대사관이 당시 워싱턴에 보낸 또 다른 전문에 따르면 김현희는 26살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보부 비밀요원이며, 쿠바의 하바나와 모스코바 등에서 3등서기관으로 근무한 북한 외교관 김원석의 딸이라고 돼있다.

외교전문 중에는 KAL 폭파사고가 북한 공작원인 김현희의 소행으로 밝혀진 뒤에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릴리 대사에게 “북한을 상대로 보복하지는 않겠다”고 약속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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