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공정거래법 시행 20주년

중앙일보

입력

"세상에 이런 불공정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대학가에서 장당 20원씩 복사를 해주며 생계를 잇는 할아버지 네명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찾았다.

이들은 "우리끼리 평화롭게 장사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젊은이 한사람이 주변에 가게를 열어 장당 15원에 복사를 해주는 불공정행위를 하고 있다" 며 공정위에 호소했다.

가격은 원가나 임대장소 등 조건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경쟁의 원리를 노인들은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정거래의 의미에 대해 당시 그 노인들을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며 10년 전 일을 회상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4월 1일로 공정거래법 시행 20주년을 맞았다.

◇ 공정거래위의 역사 = 1960~70년대 산업화 정책으로 시장구조의 독과점 문제가 부각되자 81년 4월 1일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시행되면서 공정거래 제도가 본격 도입됐다.

공정위는 정부의 경제개발 계획으로 형성된 독과점적인 시장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81년부터 매해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선정해 규제하고 각종 불공정 거래행위를 단속, 기업들엔 '경제검찰' 로 불린다.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이 사회.경제적 문제로 대두되자 86년 12월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해 공정거래법에 상호출자 금지 등 대규모 기업집단의 규제 제도를 신설했다.

98년 이후 30대 그룹과 공기업이 28조2천억원의 부당 내부거래를 한 사실을 적발해 2천5백7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기업들로부터 '원성' 을 듣기도 했다.

공정위는 81년부터 20년 동안 1만4천9백32건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해 시정조치를 했으며, 9백70개 사업자에게 모두 5천3백80억6백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 경쟁정책 거듭나야 = 지난달 19일 공정위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미국 경쟁법 전문가인 막스 스타이어 교수의 강의가 있었다.

그는 "경쟁당국은 경기에서 선수가 아닌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하며 심판의 역할도 적당히 통제돼야 한다" 고 지적했다.

그는 경쟁정책의 가장 큰 실수는 "공정거래법이 경쟁이 아니라 경쟁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 이라고 강조했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공정위의 역할도 변해야 한다" 며 "경제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에서 벗어나 기업 등 경제주체간 경쟁을 촉진해 자연스럽게 독점의 폐단을 없애야 한다" 고 강조했다.

대기업집단이나 단일 기업에 대한 독점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 결과 외국같이 소비자 후생을 떨어뜨리는 카르텔에 당국의 관심이 덜 쏠린다는 지적도 있다.

이승철 전경련 기획본부장은 "우리나라 경쟁정책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을, 거래상 강자보다 약자를, 경쟁보다 경쟁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면서 "공정거래법의 분명하고 유일한 목적은 경쟁촉진을 통한 효율의 증진에 맞춰야 한다" 고 주장했다.

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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