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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 조작 벌금으로 안 끝난다 … 미 법무부, 형사처벌 칼 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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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영국 런던은행간금리(리보) 조작 사건의 주역을 ‘교수형’에 처할 때가 됐다.” ‘닥터 둠’으로 통하는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가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물론 실제 그러란 얘기는 아니었다. 형사처벌로 일벌백계(一罰百戒)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루비니 교수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위기를 야기한 대형 금융그룹 관계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감옥살이를 하지 않았다”며 “이젠 벌금형을 넘는 처벌이 나와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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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주문이 통했을까. 미국 법무부가 “리보를 조작한 바클레이스 등 금융그룹과 관련자들을 적극적으로 기소할 계획”이라고 로이터통신이 16일 보도했다. 미 법무부는 이미 조사를 시작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사기죄를 적용해 형사처벌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는 지금까지의 관행과 분명 다르다. 미 법무부는 내부자 거래를 빼곤 금융비리 연루자들을 상대로 형사책임을 묻지 않아 왔다. 규제완화가 미덕이었던 시대 흐름 때문이었다.

 금융회사들로선 ‘설상가상’이다. 이미 영국 금융감독청(FSA)과 미국 파생상품 감독당국인 상품선물위원회(CFTC)가 조사에 들어갔다. 현재 리보 조작에 연루된 금융그룹은 20여 곳에 이른다. 영국 바클레이스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뿐 아니라 독일 도이체방크와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신용경색이 본격화한 2007년 8월 이후 2년간 리보 금리를 상습적으로 조작했다. 이들 금융그룹은 미국 법무부의 형사처벌에 앞서 막대한 벌금을 물어야 할 판이다. 미국과 영국 금융감독 당국이 부과할 벌금만도 220억 달러(약 25조8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바클레이스엔 이미 벌금 4억5000만 달러가 부과됐다.

 파장은 날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의 머빈 킹 총재까지도 조작 사실을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영국 일간지인 데일리메일 등은 “미국 재무장관 티머시 가이트너가 2008년 킹 총재에게 리보의 조작 사실을 귀띔해 줬다”고 15일 보도했다. BOE는 이미 폴 터커 부총재의 조작 묵인 의혹이 제기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미국 월가 전문가들은 법무부 움직임을 계기로 리보 사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은행 애널리스트인 리처드 보베 미 로슈데일증권 이사는 “리보 사태가 과거 금융 사건들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제2의 ‘리처드 휘트니 스캔들’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말한 리처드 휘트니는 1930년대 뉴욕증권거래소(NYSE) 이사장을 지낸 인물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의 하버드대 동창생이다. 그가 개인 빚을 갚기 위해 거래소 공금 등을 유용한 사실이 1938년 드러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29년 대공황 이후 누적된 월가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여론을 등에 업고 대대적으로 금융회사 비리 추적에 들어갔다. 그 바람에 월가의 저항과 로비로 지지부진하던 금융개혁 작업이 급물살을 탔다. 증권사들이 출자한 민간회사였던 뉴욕거래소가 공공기관이 되는 계기였다.

 금융전문지인 유로머니는 “역사를 보면 금융계 스캔들엔 규제가 뒤따랐다”며 “리보 스캔들 이후 거대 금융그룹의 돈놀이를 제약하는 움직임이 더 활발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리보(런던은행간금리)=‘London Interbank Offered Rate’의 머리글자로 만든 금융용어. 영국 은행연합회가 대형 은행들로부터 보고받은 금리 자료를 바탕으로 금융정보회사인 톰슨로이터가 계산해 공표한다. 미국 달러·유로·엔화 등 10개 통화별로 하루, 1주일, 1개월, 6개월짜리 평균 금리가 제시된다. 회원 은행들이 마음만 먹으면 금리를 조작할 수 있는 게 문제다. 바클레이스는 파생상품 계약에 맞춰 리보를 조작해 돈을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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