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직접 관여 안 했지만 큰 틀에서는 방향 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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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소속 의원 23명이 16일 ‘특정경제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중대한 경제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가 골자다. 사진은 지난달 12일 여의도연구소에서 열린 회의에서 김종인 전 비대위원이 발언하는 모습. 왼쪽부터 이혜훈 최고위원, 구상찬 전 의원, 김 전 비대위원, 남경필 의원. [뉴스1]

정치권이 추진하는 경제민주화가 슬슬 ‘대기업 때리기’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양상이다. 처음엔 공정한 거래, 투명한 경영, 합리적 자원배분 등 큰 틀의 정책이슈가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거론됐었다. 하지만 막상 새누리당이 내놓은 경제민주화 법안 1호의 핵심은 부정을 저지른 대기업을 엄히 다스리는 일에 모아졌다. 대기업에 부정적인 국민정서를 자극해 표를 이끌어내자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소속 의원 23명이 16일 발의할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횡령·배임죄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가 집행유예를 통해 풀려나는 걸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내용이다.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0일 출마선언에서 밝힌 대기업 총수에 대한 특별사면권 제한과 일맥상통한다. 박근혜계의 한 의원은 “박 전 위원장이 법안 마련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대기업 규제는 박 전 위원장이 줄곧 강조해 온 것이므로 큰 틀에서 볼 때 일치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발의자인 민현주 의원은 박근혜 캠프의 여성특보다. 발의자엔 이종훈·서용교·황영철 의원 등 박근혜계를 비롯, 쇄신파 남경필 의원 등이 포함돼 있다.

 개정안은 ▶부당이득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 ▶50억원 이상으로 나눈 현행 2단계 구분을 세 단계로 나눠 300억원 이상 구간에서 처벌을 더욱 무겁게(무기징역 또는 15년 이상의 징역) 한 게 특징이다. 민 의원은 “진짜 대기업이랄 수 있는 상위 대기업들을 겨냥한 것”이라며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과 다른 기업들 간에 경제범죄 행위로 얻는 부당이득 수준은 천지 차이인데 현행법엔 이것이 제대로 구별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 2008년 횡령·배임 혐의를 받은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은 뒤 2개월 뒤 사면을 받았고, 같은 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1조5000억원대의 분식회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나중에 사면됐다. 지난 1월 담철곤 오리온 회장도 300억원대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민 의원은 "재벌 범죄에 도덕적 경종을 울리고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해 경제민주화 실천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발의하게 됐다”고 말했다.

 재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대기업 총수만을 지목한 듯한 법안 발의는 문제가 있다. 법원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해 집행유예 처분을 내리는데, 그 가능성까지 아예 없애버리면 기업 의사결정이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똑같은 잣대를 적용한다면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정치인도 집행유예로 풀려나선 안 된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이르면 이달 말 경제민주화 2호 법안인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발의한다. 법안을 준비 중인 이종훈 의원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와 재벌총수의 사익 편취를 규제하는 보완 장치를 마련 중”이라며 “순환출자 제도로 인한 부작용을 완화하는 조항도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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