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파이프 하나 밟고 공사 … 식은땀 나는 건설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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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식 강관 비계 위에서 ‘줄타기’하듯 위태롭게 일을 하는 근로자(위). 시스템 비계가 설치된 경기도 안양 지역 주택건설 현장 근로자의 여유로운 모습(아래)과 대조적이다. [사진 안전보건공단]

지난 4월 인천시내 한 빌딩의 지하 4층 주차장 건설현장.

 하청 건설업체의 근로자 김모(54)씨가 콘크리트 거푸집 설치작업을 하다 6m 높이의 비계(飛階, 높은 곳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 설치하는 가설물)에서 떨어졌다. 발판 없이 쇠파이프로만 만들어진 비계 위에서 일하다 발이 미끄러진 것이다. 발판이 없는 곳에선 안전줄을 걸어야 하지만 그가 일하던 비계에는 줄을 걸 공간조차 없었다. 그는 두개골과 어깨, 척추가 골절돼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현재 산재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지만 완치까지는 요원한 상태다.

 소규모 건설현장이 ‘안전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15일 고용노동부·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현장 사고 재해자는 8만6045명으로 전년에 비해 4797명이 줄었다. 하지만 유독 건설업만은 310명이 늘어난 2만2187명이었다. 이 중 577명이 숨졌으며 절반 이상(54%)이 공사비 규모 20억원 미만의 소규모 현장에서 발생했다. 특히 발판·난간조차 없는 비계 위에서 작업을 하다 떨어진 사례가 많았다.

 전문가들은 사고 방지를 위해 규격화된 자재를 사용하는 시스템 비계를 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비계공(飛階工)이 크기·모양이 제각각인 강관을 엮어 만드는 재래식 비계에 비해 시스템 비계는 일정한 규격의 자재를 컴퓨터설계(CAD) 도면에 따라 레고블록 쌓듯 조립해 만든다. 재래식 비계에 비해 안정성이 높고 발판·난간도 기본 자재로 포함돼 있 다. 하지만 비용이 문제다. 한 영세 건설업체 관계자는 “시스템 비계가 안전하다는 건 알지만 임대비와 설치비가 비싸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스템 비계의 임대·설치비는 ㎡당 1만원이 넘어 재래식 비계보다 30~50%가량 비싸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최돈흥 연구위원은 “일정 규모 이하의 작업장에서 시스템 비계를 사용할 경우 정부가 임대비 일부를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벽성대 박종근(토목환경) 교수는 “공사예산 편성기준을 재래식 비계에서 시스템 비계로 바꿔 건축주에게 떳떳하게 비용청구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부에서는 건설업체들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이 사고를 유발한다고 지적한다. 안전관련 투자를 너무 소홀히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작은 규모의 공사에도 안전설비를 철저히 갖춘다. 2010년 한국에 진출한 일본계 건설회사 타니가와 코리아는 5억원대의 목조 단독주택을 지으면서도 시스템 비계를 쓴다. 최근 경기도 판교의 공사현장에서 만난 기쿠하라 신이치(59) 이사는 “근로자들이 발판도 없이 파이프 위에서 줄타기를 하듯 일을 하는 장면은 일본에선 30년 전에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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