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제민주화의 선명성 경쟁을 경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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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경제민주화가 지나치면 안 된다”고 말했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엊그제 국회에서 난타당한 건 심각한 문제다. 박 장관 발언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우리는 박 장관이 해선 안 될 말을 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는 “경제민주화의 총론을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다만) 지나치면 외국인 투자를 막고 무역 장벽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경제장관 입장에선 충분히 할 수 있는 우려다. 그런데도 통합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는 “발언이 부정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라고 비판했고, 새누리당 의원은 “여야가 공히 추진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인사 말씀에서 한번 언급해 줬으면 좋지 않았겠나 싶다”고 꼬집었다. 이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비판과 반대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오만한 태도로 비춰지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대세로 자리 잡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국민의 불만과 공정성에 대한 갈망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회경제구조가 약자에게 지극히 불리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양극화 심화와 빈곤 확산에 대한 불만도 상당하다. 게다가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가계부채 문제도 대단히 심각하다. 재벌의 탐욕과 기득권자들의 반칙이 심하다는 불만도 많다. 경제민주화가 이런 구조를 뜯어고칠 해법이라 생각하고 있는 건 그래서다. 그러니 여야 구분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정치인이 경제민주화란 말을 입에 달고 있는 것이다. 야당의 대선 주자는 말할 것도 없고 새누리당의 박근혜 의원이 경제민주화를 국민 행복을 위한 첫 번째 핵심과제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우리는 정치권이 마치 선명성 경쟁하듯이 경제민주화를 앞다퉈 주장하는 건 문제라고 본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 문제점들을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악화시킬 위험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지극히 모호하다. 주장하는 사람마다 경제민주화의 내용이 다 다른 이유다. 재벌 개혁만 해도 새누리당은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는 도입하지 말고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자는 데 반해, 민주당은 출총제를 다시 도입하고 기존 순환출자도 단계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근로자가 기업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참여경제’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는 견해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된 데는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와 민주주의가 서로 배치되는 개념인 때문도 크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논리며, 작동원리는 견제와 균형이다. 반면 시장경제는 ‘1원 1표’의 논리로, 자유와 경쟁을 핵심 키워드로 한다. 이 때문에 경제와 민주화는 모순되기도 한다. 견제와 균형이 지나치면 자유와 경쟁이 저해된다. 경제민주화가 시장경제의 장점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민주화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자칫 나라 경제에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재벌개혁도 마찬가지다. 양당은 경쟁적으로 재벌개혁 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새누리당은 신규 순환출자 금지 외에도 일감 몰아주기,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규제 강화와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통합민주당은 출총제와 순환출자 외에 금산분리 강화 등도 당론화했다. 이처럼 재벌규제가 쏟아지고 있는 데는 재벌 탓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재벌 규제를 만들 때는 지극히 신중해야 한다. 지나칠 경우 재벌의 강점이 상실되고, 경제 활력이 손상될 위험 때문이다. 이보다는 오히려 지금 있는 규제만이라도 알차게 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법이 지금보다 더 엄정하게 집행돼야 한다는 전제에서다. 중죄를 저지른 기업인을 ‘경제 기여’ 등의 명분으로 집행유예로 풀어주거나, 사면하는 행태는 재연돼선 안 된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갈망이 높아진 데는 이 같은 재벌 행태와 솜방망이 처벌 탓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재벌의 자성을 강하게 촉구한다. 경제민주화가 왜 대세가 됐는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재벌의 활동을 꽁꽁 묶는 규제들이 나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신들뿐 아니라 나라 경제에도 큰 손해다. 그동안 중소기업을 동반자로 여기지 않고 착취의 대상으로 삼거나, 벤처기업의 특허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빼앗는 일이 빈번했다. 경영권을 상속하기 위해 자녀가 설립한 비상장 계열사에 다른 계열사의 자산을 빼돌리는 불법과 편법도 만연했다. 재벌 스스로 국민의 반감을 자초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변화를 강요당하기 이전에 재벌 스스로 알아서 이 같은 행태를 확 뜯어고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경제민주화가 대세로 자리 잡은 배경은 충분히 이해된다.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갈망은 대단히 높고, 이를 어떤 식으로든 반영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있다. 다만 어떤 일이든 지나쳐선 안 된다. 경제민주화를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해서도 안 된다. 지나치면 경제 살리기를 저해할 위험도 다분하다. 어떤 경제민주화가 우리에게 보약이 되는지, 냉철히 따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