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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옥수수·콩 말라가는데 … 먹을 것 많아진 농산물 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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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미국이 그렇다. 비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이상고온과 가뭄이 미 대륙의 중서부 곡창지대를 강타했다. 이 때문에 옥수수·대두 같은 주요 농산물 작황이 “1988년 대가뭄 이래 최악을 기록할 것”(로이터통신)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공급이 달리니 가격은 오른다. 최근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2007~2008년 세계 식량대란을 몰고 왔던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0일(현지시간) 미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된 옥수수와 대두 선물 가격은 1% 이상 하락했다. 주말에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나오고, 최근 가격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오면서다. 그러나 전날인 9일 대두는 장중 3% 오르며 부셸(1부셸은 소맥·대두는 27.2㎏, 옥수수는 25.4㎏)당 16.65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옥수수는 지난달 중순 이후 30% 넘게 올랐고, 소맥(밀) 가격도 한 달 새 20% 이상 상승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 따르면 이달 초 곡물가격은 애그플레이션이 있었던 2007~2008년 평균 가격보다 밀은 9%, 옥수수는 58%, 대두는 56%나 상승했다.

 최근의 곡물가격 상승은 2008년과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당시에는 수요 증가가 문제였다.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중국 등 개도국에서 육류 섭취가 늘면서 사료로 쓰이는 곡물 수요가 급증했다. 중국은 지난 20년 동안 육류(소·돼지)와 가금류(닭 등) 소비가 각각 2배, 4배로 늘었다. 이 때문에 사료로 쓰이는 옥수수 수요는 10년 전보다 47배나 증가했다. 여기에 옥수수 등을 이용한 에탄올 등 대체에너지 개발로 곡물 수요가 크게 늘었다.

 올해는 일단 공급이 문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주요 곡창지대의 가뭄은 올해 초부터 이른바 ‘남미 콩 벨트’(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파라과이)를 강타했다. 최근엔 미 중서부가 고온과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날씨가 이러니 곡물 수확량이 급감했다. 미 농무부는 최근 옥수수와 대두의 품질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우수’ 판정을 받은 비율은 40%에 그쳤다. 미국에 최악의 가뭄이 발생한 88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미국은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의 17%를 차지한다. 미국산 옥수수는 전 세계 출하량의 절반을, 대두는 수출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작황이 좋지 않으면 세계의 식량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 후세인 알리다나 모건스탠리 곡물분야 연구원은 최근 FT와의 인터뷰에서 “옥수수와 콩 등 일부 농작물은 재난 상황에 근접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투기 세력까지 가세해 곡물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침체하면서 자금이 곡물로 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최근의 곡물가격 상승은 일시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철중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농산물 재고량이 많아 애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은 작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세계 옥수수 재고량은 7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으나 올해 6월 기준으로는 1억5000t이 넘는다. 올해(2011~2012년) 세계 곡물 재고율 전망치는 20.1%로, 2007~2008년의 애그플레이션 때의 저점(17.2%)보다 높다.

 그리고 가격이 오르면 공급도 늘어난다. 곡물은 매장량이 한정된 원유나 비철금속과는 다르다. 지난달 말 공개된 미국 내 파종면적 보고서를 보면 옥수수의 올해 파종면적은 전년보다 4.9% 늘어난 9640만 에이커다. 1937년 이후 최대치다. 지난해부터 옥수수 가격이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소맥과 대두의 파종면적도 전년보다 늘었다.

 세계 경기 둔화로 가격이 오른 곡물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급증한 투기 세력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우성원 키움증권 연구원은 “옥수수를 제외한 소맥·대두 등의 투기 물량은 2010~2011년 급등기 수준보다도 많다”며 “투기 세력이 더 들어와 가격을 높이기보다는 단기 가격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애그플레이션은 투자의 세계에서는 전반적으로 악재다. 하지만 호재가 되는 분야도 있다. 농산물 관련 펀드와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다. 11일 펀드 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들어 농산물 펀드의 수익률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특히 곡물 가격을 추종하는 파생상품형 펀드의 최근 1개월 수익률은 10%를 웃돈다. ‘미래에셋TIGER농산물선물특별자산상장지수펀드(ETF)’는 한 달 새 20%에 육박하는 성과를 냈다. ‘삼성KODEX콩선물(H)특별자산ETF’는 연초 이후 33%의 수익을 거뒀다.

 곡물 가격의 상승분을 그대로 수익으로 내고 싶다면 해외선물 투자를 할 수도 있다. 증권사나 은행에 들러 해외선물 계좌를 개설하면 된다. 최근 곡물 해외선물 투자도 늘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1월 3억 달러에 못 미치던 CBOT의 옥수수 선물 거래금액은 5월 5억3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이종호 이트레이드증권 해외선물 팀장은 “국내에서 선물 거래를 하려면 최소 1500만원의 증거금이 있어야 하지만 해외 선물 거래에서는 필요 없다”며 “품목도 옥수수·콩 등 일상생활과 밀접해 오히려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물 투자가 부담이라면 미국 시장에 상장된 주식이나 ETF를 고려해 볼 만하다. 해외주식계좌를 만들면 세계 최대 종자회사인 몬산토와 농기계 회사인 디어 등에 투자할 수 있다. 그리고 옥수수나 곡물 선물 가격을 추종하거나 농업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ETF를 고를 수도 있다.

 그러나 곡물 선물거래나 농산물 펀드는 가격 등락에 따른 수익률 변동폭이 크다. “농산물 관련 투자는 분산 투자 관점에서 포트폴리오의 10~20% 수준을 유지하는 게 좋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애그플레이션(agflation)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조어.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서 일반 물가도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2007~2008년 바이오 에탄올 주원료인 옥수수 수요 증가와 개발도상국의 소비수준 향상에 따른 곡물 수요 증가로 곡물 가격이 급등했으나 2008년 가을 금융위기로 급락했다. 이후 2010년 여름 기상악화로 인한 밀 생산 감소로 러시아가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하면서 밀 가격이 급등했고, 투기 세력이 가세하면서 대두·옥수수 등 가격까지 동반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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