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수 왕양·보시라이 노선 투쟁 … 왕리쥔 사건 뒤 광둥 모델 득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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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광둥성 내 주요 시 단위 간부들이 광저우에 모여 컴퓨터·인터넷 활용 시험을 치르는 가운데 왕양 광둥성 서기(오른쪽)가 고사장을 둘러보고 있다. [남방일보 웹사이트]

지난 3월 열린 중국 전인대(全人大·국회 격)에서는 앞으로 중국이 어떻게 사회안정과 개혁·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느냐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두 명의 정치스타가 맞붙었다. 보시라이(薄希來·63) 충칭(重慶)시 서기와 왕양(汪洋·57) 광둥(廣東)성 서기였다. 둘은 중국 정계의 양대 파벌인 태자당(太子黨)과 공청단(共靑團)의 핵심 인물로, 올가을 당대회에서 중국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 진출을 놓고 다투고 있었다.

 보 서기가 먼저 “파이를 먼저 나누고 다시 크게 만들자”고 외쳤다. 이른바 ‘선(先) 분배, 후(後) 성장론’이다. 왕 서기는 “파이를 먼저 키워야 한다”고 맞받았다. ‘선 성장, 후 분배론’이다.

 당시만 해도 보 서기가 우세했다. 충칭시는 저소득층에 대한 보험 혜택을 대폭 늘리면서도 연평균 15%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었다. 또 보가 시행 중이던 ‘창훙다헤이(唱紅打黑·공산 혁명가를 부르고 범죄조직을 소탕) 정책’으로 공산혁명정신이 확산되고 4000명이 넘는 폭력배가 검거돼 당 중앙의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2월 초 발생한 왕리쥔(王立軍) 충칭시 부시장의 미국영사관 진입과 망명기도 사건으로 보 서기는 실각(3월 15일)했다. 이후 조사과정에서 충칭시의 무리한 인권탄압과 과다한 재정지출, 부패, 포퓰리즘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충칭 모델은 빛을 잃었다.

 대신 왕 서기는 산업구조 선진화, 대화를 통한 분규 수습, 당과 규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상 해방 등을 주창하며 모든 분야의 효율성과 선진성을 추구했다. 지난해 9월 광둥성 루펑(陸豊)시 우칸(烏坎)촌 농민들이 불법토지 수용에 반대해 벌인 시위를 무려 3개월여 동안 대화로 풀도록 유도해 해결한 것을 두고 중국언론은 향후 중국 사회모순을 해결하는 모델을 제시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결국 보 전 서기의 후원자였던 저우융캉(周永康) 당 중앙정법위 서기까지 4일 “광둥성은 항상 다른 지역보다 한 걸음 먼저 나가며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을 위한 모델을 제시했다”며 “올가을 18차 당대회의 성공적인 개최와 이후 국가발전을 위해 지도(指導)적 경험을 전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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