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찌질하고 소심한 요즘 마초들이여 김 여사 뒤에 숨지 말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잔뜩 화가 난 여자가 고개를 흔들며 남자 얼굴에 쉴 새 없이 침방울을 쏘아대고 있다. 자막은 말한다. “침 튀기며 설교만 하는 그대는 차장인가, 세차장인가.”

 지난 상반기 히트 광고 중 하나로 꼽히는 취업 포털의 CF다. 직급별 캐릭터의 특징을 절묘하게 포착한 7편의 시리즈 중 유일한 여성 주인공은 차장이다. 남성들도 무능(“일만 받으면 끌어안고 묵히는 그대는 국장인가, 청국장인가”), 무책임(“책임질 일에는 나 몰라라 하는 그대는 이사인가, 남이사인가”) 등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그러나 여성 차장처럼 성격의 밑바닥을 보여주진 않는다. “여자 선배의 히스테리를 주의하라”는 직장인들의 오래된 속설을 떠올리게 한다.

 ‘세차장’과 앙상블을 이루는 것이 ‘김 여사’와 ‘○○녀’다. 김 여사는 운전 미숙으로 황당한 사고를 내는 중년 여성의 대명사다. 젊은 여성들에게는 ○○녀의 딱지가 붙는다. 여성은 직장에서 악착같고 도로에선 열등하며 거리와 지하철에선 몰상식하다는 도식이 완성된다.

 회사원 가운데 성격 나쁜 여성이 성격 나쁜 남성보다 많다는 통계는 어디에도 없다. 여성의 목소리가 높다 보니, 그 수가 적다 보니 귀에 잘 들리고 눈에 잘 띄는 건지도 모른다. 방송(SBS) 보도에 따르면 안전운전 불이행, 신호 위반으로 인한 교통사고 비율은 남성이 여성보다 3배 많다고 한다. 지하철 안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도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남성 쪽이 훨씬 많다. 여성성에 대한 폄하는 2000년대 들어 이른바 ‘여풍(女風)’이 불기 시작한 것과 맞물려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녀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전후해 등장했다. 김 여사 시리즈가 나온 것은 2006년 상반기부터다.

 거센 여풍에 위축된 남성들이 여성의 특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 무의식적으로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수백만 년 내려온 마초(macho·남성우월주의자) 유전자의 짓인데 정작 마초다움은 빠져 있다. 마초는 모름지기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미와 박력이 생명이다. 요즘 마초들은 왠지 소심하고 찌질하다. 여자 직원이 생수통 드는 걸 보면 슬금슬금 피하기 바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패기와 우직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잘나가는 알파걸들이 “결혼하고 싶은데 상대를 찾을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뒤에서 구시렁거려봤자 자신감만 쪼그라든다. 전반적인 인식이 바뀌고 있다 해도 아직은 남자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남성 동지들이여. 김 여사 뒤에 숨지 말자. 여성을 청순가련의 판타지 속에 가두지 말자. 청승 그만 떨고 나만의 꿈부터 키우자. 보이즈 비 앰비셔스(Boys, be ambitious·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이제 덜 자란 마초들을 향한 경구다.

글= 권석천 논설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