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동물이나 식물이나 착하게 키워서 착하게 소비해야 착한 우리 몸 만들어지는 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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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쪽에선 멍멍이가 멍멍, 저쪽에선 닭이 꼬꼬댁 꼬꼬, 건너편에선 거위까지 덩달아 꽈악꽈악. 서수남·하청일의 동물농장이 따로 없다.

 새로 이사 온 동네. 아침 산책 좀 하려니 모퉁이를 돌기 무섭게 온갖 동물이 난리다.

 며칠 후. 시루에서 방금 쪄 낸 따끈따끈한 떡을 일일이 접시에 담아 눈인사와 함께 집집을 돌았다. 주인들과 접시를 주고받으며 얘기를 하는데 그렇게 울고 경계하던 바로 그 개와 닭과 거위가, 초롱초롱 눈을 뜨고 나하고 제 주인을 번갈아 쳐다본다. ‘아, 주인님과 친한 걸 보니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구나. 다음엔 짖지 말아야지’ 하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 산책길에도 닭·거위·개 모두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울기는커녕 꼬리를 흔들며 눈을 맞추고 날 반기는 게 아닌가. 참 똑똑하고 용감한 녀석들이다.

 난 동물도 좋아하고 동물성 음식도 좋아한다. 삼계탕도 잘 먹고 돼지삼겹살도 좋아한다. 덥고 비 오는 날 먹는 치킨과 생맥주. 그건 일품이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고기를 즐기지 못할 것 같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 봤던 ‘기업형 양계장’과 ‘유기견도 개고기로 유통되다’란 기사 때문이다. 끔찍했다.

 닭은 평생을 A4용지만 한 공간에서 지낸단다. 옆으로 돌지도 틀지도 못하고 서서 먹고 알 낳고 배설하고. 병아리의 부리를 커다란 손톱깎이 같은 기계로 싹둑 자르는 것도 봤다. 서로 부리를 쪼아댈까 봐 그런다나. 겹쳐 얹은 철창우리 맨 위에 있는 닭들의 배설물이 아래로 흘러내려서 다량의 질소와 암모니아의 독한 가스 때문에 아래쪽 닭들은 눈도 멀고 깃털 없이 깃대만 남는단다. 정상적인 닭은 일 년에 12~24개의 알을 낳는데 이 공장의 닭들은 250~280개의 알을 낳으니 엉덩이는 빨갛게 퉁퉁 부어올랐더라.

 보신탕용 개는 또 어떻고. 서울 청량리 어디라던데, 바닥에는 내장이 쏟아진 채 죽은 개들이 널브러져 있고 칸막이 뒤로는 살아있는 개들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듯 떨고 있는 모습이며 축 처진 겁먹은 개의 눈이며. 그 장면을 보고 나서 저녁밥을 하나도 못 먹었다.

 적당한 곳으로 유기견을 입양시킬 의무가 있는 유기견 보호소. 그런데 이 보호소 몇몇 군데에서는 개고기로 되팔기도 하고 심지어는 삶아 먹기도 한단다.

 큰일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될 수도 없는데. 어떻게 키우든 간에, 닭이나 돼지 같은 동물을 대량생산해 저렴하게 왕창 먹을 수 있어서 환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고기와 함께, 동물이 학대받아 생긴 스트레스 독소까지 우리 몸으로 고스란히 왕창 들어온다는 건 잊지 말자. 보신용이 보신이 아닌 게다. 식물도 스트레스도 받고 아픔도 느낀다고? 하지만 식물은 초롱초롱한 눈동자도 없고 사람을 알아보고 흔드는 꼬리도 없지 않은가. 방법은 하나다. 착하게 키워서 착하게 조금씩만 먹고 착한 몸 만드는 거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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