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열면 여학생 "꺄아악" 비명…이런게 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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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비가 새는 서울 강북의 B초등학교 교실, 28년간 마룻바닥(가운데)과 나무창틀을 한 번도 교체 안 해 곳곳이 갈라진 양천구 A초등학교 교실. [이한길·김경희 기자]

“끼이익, 끽, 끽….”

 지난달 28일 오후, 수업이 한창이던 서울 양천구 A초교의 4학년 교실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학생들이 놀라 일제히 귀를 막았다. 몇몇 여학생은 “꺄아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창가에 앉은 한 남학생이 낡아서 뒤틀어진 창문을 힘으로 열려다 생긴 쇳소리였다. 친구들의 짜증에 얼굴이 벌게진 이 학생은 “더워서 바람이라도 쐬려고 했는데…”라며 얼버무렸다. 이 학교의 창틀은 1984년 개교 이후 28년간 한번도 교체하지 않았다.

 나무로 된 교실 바닥도 마찬가지다. 틈이 벌어져 발을 옮길 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났다. 4학년 박모군은 “청소 시간에 나무 틈에 낀 쓰레기나 먼지를 빼내려다 나무 가시에 자주 찔린다”며 울상을 지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정한 교실 창호의 내구연한은 25년, 나무 바닥은 15년이다. 이 학교는 이미 내구연한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수리를 못 하고 있다. 교장은 “교육청에 매년 수리를 요청했지만 예산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돌아온다”고 말했다.

 교실은 학생들에겐 ‘안방’이나 다름없다. 초등생은 하루 4~7시간, 중고생은 최대 12시간 이상 머문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집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하지만 디지털 교육을 외치는 지금, 적지 않은 교실이 편안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았다. 지난해 경기도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 내 2184개 초·중·고 가운데 23.6%인 516곳에서 빗물이 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다.

 서울 강북의 B초교는 집중호우가 내린 지난 주말 가슴을 졸였다. 이 학교는 지난 4월 본관 3층 교실 천장과 기둥 곳곳에서 갑자기 물이 샜다. 본관은 지은 지 29년 됐다. 학교 관계자는 “한동안 물이 떨어지는 곳에 양동이를 놓은 채로 수업을 했다”며 “5월 초에 급하게 방수공사를 했지만 장마철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방음이 제대로 안 되는 교실도 많다. 서울 노원구 C중학교는 올해 학생식당을 지으며 1층에 있던 음악실을 2층으로 옮겼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해 방음설비를 갖추지 못했다. 이 학교 수학교사는 “음악실 주변 교실에선 노랫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수업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 김포공항 근처의 D초교는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마다 소음 때문에 수업을 잠시 멈추곤 한다. 교장은 “창문이 얇은 홑창이라 방음 효과가 거의 없다”며 “두꺼운 유리에 이중창을 쓰면 좋을 텐데 여기보다 열악한 학교가 많다 보니 예산 지원받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현장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과학기술부나 시·도 교육청은 교실 누수 현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강원도교육청이 실시한 학교시설 실태조사가 거의 유일하다. 조사에 따르면 강원도 내 초·중·고 교실 1만8993곳 가운데 바닥이 낡아 개선이 필요한 교실이 2164곳, 방수공사 필요 교실 1934곳, 창문 교체 필요 교실이 2325곳이었다. 안전 문제도 여전하다. 교과부가 2010년 전국 초·중·고 건물 안전점검을 벌인 결과 재난위험시설인 D·E 등급 건물이 110개 동, 중점관리가 필요한 C급이 1348개 동이었다. 동의대 류호섭(건축학과) 교수는 “열악한 교실은 학습능률은 물론 성적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교실을 아늑한 공간으로 꾸미기 위한 예산 확충 등에 보다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상급식 예산은 7배 이상 증가=한국교총은 “2010~2012년 서울시교육청 예산안을 분석한 결과 무상급식 예산은 7배 이상 증가한 반면 시설 예산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1일 밝혔다. 이에 따르면 서울의 무상급식 예산은 2010년 172억원에서 올해 1381억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학교시설·교육환경 개선 예산은 6179억원에서 2849억원으로 줄었다. 김동석 대변인은 “무상급식 실시로 시설예산이 축소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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