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총국장
지난 일요일 버지니아주 매클린 인근의 리버벤드 공원에서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워싱턴 특파원을 만났다. 서로 워싱턴 생활의 애환을 주고받던 중 미국 대선 얘기가 나왔다. 공교롭게도 그와 내 입에선 동시에 “재미가 없죠”란 말이 튀어나왔다. 진단도 일치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맞선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파이팅이 부족하다는 거였다.
선거를 스포츠와 비교하면 정치인들이 싫어하겠지만 경쟁의 묘미는 챔피언보다는 아무래도 도전자 쪽이다. 특히 경제가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미국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미국인들은 4년 전 오바마가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희망의 불을 지펴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 도전자에겐 이보다 유리한 상황이 없다.
27일 롬니를 지척에서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백악관에서 30마일 남짓 떨어진 버지니아주 스털링시의 한 공장 창고에서였다. 경제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롬니는 공장 창고를 유세장으로 즐겨 이용한다. 오랜만에 본 롬니의 얼굴은 전보다 까매 있었다.
“오바마는 연방정부를 키우고 기업들의 선택에 간섭하고 있다. 그건 선조들의 건국이념에 맞지 않는다. 나는 자유시장경제(free market system)를 되살리겠다….”
‘미국인에게 일자리를’이란 표어를 내걸고 한 18분의 연설에서 그는 15분간 경제를 말했다. 절실한 주제였다. 하지만 동어반복이었다. 매끈한 연설이었지만 400여 명의 청중 가슴에선 불길이 피어오르지 않았다.
6월 4일자 타임지는 그 해답을 롬니의 어머니에게서 찾았다.
1970년 영화배우 출신인 레노레 롬니는 미시간주의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남편인 조지 롬니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지 2년 만이었다. 22세의 막내아들 롬니는 대학까지 휴학한 채 어머니의 선거캠페인을 도왔다. 하지만 그 선거는 그에겐 트라우마였다. 그해 7월 유세 중에 반대 진영의 한 남자가 크림파이를 들고 롬니에게 달려들었다. 가까스로 파이 세례를 피하는 청년 롬니의 모습을 한 지방 잡지가 찍었다. 낙선한 어머니는 캠프 해단식에서 눈물을 쏟았다. 당시 어머니는 경쟁 후보보다 같은 공화당 내 보수세력에 더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실패를 보면서 젊은 롬니는 ‘수비 위주’의 정치를 배웠다. 도전적이기보다는 실수를 줄이는 정치, 좀 밋밋하더라도 안전운행을 하는 정치였다.
미국 대선은 겨우 4개월 남았다. 오바마가 이길지, 롬니가 이길지 승부의 추는 기울지 않았다. 누구의 당선이 태평양 건너 한국에 유리할지를 따지며 지켜볼 뿐이다. 다만 한 가지. 11월까지 워싱턴 특파원들은 미국 대선으로 밥상을 차려야 한다. 주식재료가 시원찮으면 부식거리를 고민해야 한다. 롬니가 그 고민을 덜어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현재로선 난망하다. 4년 전의 『담대한 희망』처럼 미국인들의 가슴을 뛰게 할 뭔가가 아직 미국 대선에선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