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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인·탈북자까지…연봉7000만원 비정규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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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백일현 기자

국회의원 보좌진. 의원들을 뒤에서 도우면서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최근엔 이들이 전면에 나오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을 공모한 것도,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서 돈봉투를 돌린 것도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문고리 권력’을 잡고 있는 국회의원 보좌진의 세계를 파헤쳐 봤습니다.

많게는 연봉 7000만원 받는 비정규직

의원 한 명이 채용할 수 있는 보좌진은 별정직 공무원으론 7명입니다. 4급 보좌관(서기관급) 2명, 5급 비서관(사무관급) 2명, 6·7·9급 비서 각 1명씩인데요, 인턴 2명도 채용이 가능해 의원 1명당 일자리 9개를 쥐고 있습니다.

 국회 보좌진은 상당한 연봉을 받습니다. 4급과 5급이 7000여만원, 6000여만원을 받고, 말단인 9급 연봉도 3000여만원에 이릅니다. 하지만 4년마다 자신이 모시는 의원의 운명과 함께 일자리의 안정성이 흔들리는 것이 직업으로선 단점으로 꼽힙니다. 회기 중에도 의원과의 갈등 등으로 그만두는 이가 부지기수인 이른바 ‘비정규직’입니다.

 업무량도 정부 고위직 청문회에서부터 국정감사, 정부 예산 심의 및 결산 심사, 각종 특위활동 등으로 상당히 많습니다. 정책 보좌진은 국정감사 기간엔 산하기관의 문제를 꼬집는 질의서를 쓰느라 밤을 새우는 게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입니다. 정무 담당 보좌진은 의원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의원이 선택해야 할 정치적 방향에 대해 조언하기도 합니다.

 지난 5월 25일 국회 의정연수원은 19대 국회 신입 보좌진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당시 20년간 보좌관 생활을 했다는 강사는 말했습니다. “…재경 향우회는 대개 일요일에 열리는데 바쁜 의원 대신 보좌관이 챙겨야 합니다…. 예전에 있던 후원회가 없어진 대신 출판기념회도 변칙적으로 해야 합니다. 의원들이 내는 책은 작가가 쓰기도 하지만 여러분이 써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책 자료집, 인터뷰, 백분토론 자료 모두 여러분이 만들어 드려야 해요. 그래서 여러분은 만능이 돼야 합니다.”

 18대 국회 보좌진은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벌어지는 몸싸움에도 동원됐습니다. 의원이 속한 당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다른 당 보좌진과 멱살잡이를 해야 했던 겁니다. 이 때문에 일부 의원은 태권도 유단자 등을 선호한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어떤 보좌진은 ‘충성 경쟁’ 차원에서 과도한 폭력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보좌진도 계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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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진도 자신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뭉칩니다. 모시는 의원이 속한 정당에 따라 새누리당 보좌진협의회(새보협), 민주통합당 보좌진협의회(민보협) 등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이들 모임의 회장은 보좌진의 복지 증진을 위해 애씁니다. 18대 국회 때 이들 모임은 당과 의원을 위해 몸싸움을 하다 다친 보좌진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19대 총선을 앞두고 각 당에 보좌진 출신들을 비례대표 후보로 배정해 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모임은 구직을 희망하는 이들의 이력서를 받아 의원과 연결시켜주기도 합니다.

 보좌진은 당원인 경우도 있지만 당적이 없는 이도 많습니다. 새누리당 의원의 보좌관이었다가 4년 뒤엔 민주통합당 의원 보좌관이 돼야 할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초선 의원들은 자신이 과거 생업을 하면서 함께 일했던 이들을 데리고 오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런 이들은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별 보좌진 모임도 있습니다. 연세대 모임, 고려대 보좌진 모임 등인데요. 한때 서강대 모임이 연말 행사를 열면 동문인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서강대 교수 출신인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 등이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보좌진도 계파가 있습니다. 새누리당에선 박근혜계 의원을 모시는 보좌진끼리, 이명박계 의원을 모시는 보좌진끼리 서로 친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대선 경선이 벌어지면 각 후보의 캠프에 파견되다 보니 함께 일하면서 가까워지게 됩니다. 19대 국회 들어선 박근혜계 의원을 모시는 보좌진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게 정설입니다.

 보좌진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이는 정책 관련 일을 잘하거나 정보가 많은 보좌진입니다. 국회 16개 상임위마다 전문성을 갖춘 보좌진은 다른 보좌진의 존경을 받고, 의원들에게도 알려져 있습니다.

몽골인에서 탈북자까지 …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1월 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브리핑실에서 최구식 전 의원비서 등이 연루된 중앙선관위 DDos 공격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19대 국회는 탈북자 국회의원(새누리당 조명철), 귀화인 국회의원(새누리당 이자스민)을 처음으로 배출한 만큼 다양한 성격의 보좌진을 탄생시켰습니다. 필리핀 출신인 이자스민 의원은 몽골 출신의 귀화 한국인을 보좌진으로 영입했고, 조명철 의원도 탈북자를 보좌진으로 채용했습니다.

 전문직도 많습니다. 변호사 출신이 자신이 존경하는 의원실에서 보좌진으로 일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경제학과 법학 등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보좌진도 곳곳에 포진해있습니다. 하버드 출신으로 새누리당의 20대 정치 스타였던 이준석 전 비상대책위원도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외국 명문대 출신들이 의정활동을 경험해보고 싶다며 보좌진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성 보좌진도 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과거 정치가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질 때는 보좌진 중에서 여성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1988년만 해도 국회 여성 비서관은 2명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7대 국회 10여 명, 18대 국회 36명 등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지금은 전문성으로 무장한 여성 수석보좌관도 생겼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미래보다 의원 보좌와 입법에 온 힘을 쏟는 비율이 남성 보좌관보다 높다는 평입니다.

 채용 시스템도 다양해졌습니다. 예전엔 의원과의 개인적 친분이나 지역 연고로 뽑는 게 관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국회 홈페이지(http://www.assembly.go.kr)의 ‘의원실 채용’ 공고란을 통해 공개 모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한 의원실은 ‘완전 공개 경쟁 채용’을 내걸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기존 채용이 서류와 면접으로 구성되는 데 반해 이 의원실은 ‘서류심사(10점)+정책 발표 및 토론회(40점-상호평가 20점, 의원실 평가 20점)+가상 TV토론 자료집 작성 평가(30점)+보도자료, 논평 작성(20점) 등을 내걸었습니다.

 최근엔 홈페이지 관리나 사진촬영, SNS 등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점차 소통 능력이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부 보좌진의 성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종북’ 논란에 휩싸인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데려온 보좌진을 두고 “보좌진은 2급 비밀 취급 인가증을 발급받아 군사기밀에도 접근할 수 있는데 종북 성향 보좌진에게 그런 권한을 줘도 괜찮은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이석기 의원의 보좌진에는 통합진보당 옛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전략가가 합류했다고 합니다.

 의원이 자녀를 보좌진으로 채용하는 경우도 논란입니다.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은 수년간 자기 딸을 보좌진으로 고용했고, 민주통합당 서종표 전 의원의 딸은 국회에 출근하지 않은 채 수년간 연봉 7000여만원의 4급 보좌관 월급을 타갔다는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서로를 잘 아는 가족이 더 잘 보좌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지만 아무래도 국가 세비로 가족을 취직시켰다는 비난을 피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영감’에 충성…정치적 동지로 발전한 경우도

보좌진은 크고 작은 권력을 행사합니다. 국회에서 오래 근무한 보좌진은 웬만한 초선 의원보다 정보가 많고, 각종 이슈 제기를 선도합니다. 지난해 대기업의 MRO(소모성 자재 구매대행)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된 것도 중소기업들의 민원을 들은 보좌관이 의원에게 이슈화할 것을 건의한 데서 시작됐다는 말이 돕니다.

 이 때문에 상임위 산하기관들은 보좌진 관리에 공을 들입니다. 자료를 요구하거나 문제를 파헤치는 질의서를 쓸 때 살살 해달라는 취지입니다. 보좌진에게 밥과 술을 사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의원 몰래 산하기관을 윽박지르거나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며 ‘월권’을 행사하는 보좌진도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전 보좌관 박배수씨는 각종 인사 청탁과 저축은행 구명 로비 등과 관련해 수억원의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의원의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수행하는 9급 비서 중에서도 의원 일정을 거의 모두 따라다니다 보니 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이가 많습니다. 가족 문제부터 의원과 친한 정권 실세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으니 의원이 숨기고 싶은 이야기까지 파악하게 되는 겁니다. 이 때문에 과거 어떤 수행비서는 “내가 의원 당신 비밀을 아니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의원들 사이에 돌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의원들은 보좌진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거나 아예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관리’에 신경을 씁니다.

 보좌진은 의원 옆에 있다 보니 각종 정부 정책 시행을 미리 알게 됩니다. 이때 일부 보좌진은 그런 정보를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는 ‘정보 장사’에 나서거나 본인이 직접 주식 투자 등으로 수익을 얻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중앙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공격 사건 당시 국회의원의 9급 비서가 병원장이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인사들과 술자리를 한 것도 그런 성격의 모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좌진은 자신이 모시는 의원을 ‘영감’이라고 높이며 모십니다. 같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정치적 동지’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그렇습니다. 이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시작해 지금은 ‘노무현의 꿈’을 이루겠다며 애쓰는 정치적 후계자가 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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