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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리뷰] 일상사의 아름다움 '이웃의 야마다군'

중앙일보

입력

이시이 히사이치가 아사이신문에 게재하는 4컷짜리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있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99년작 '이웃의 야마다군'은 104분의 러닝타임에 20여개의 크고작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아사이신문의 4컷만화 제목은 이후 '이웃의 야마다군'에서 '이웃의 노노짱'으로 바뀌었으며, '00년도말까지 발매된 DVD 한정판에 포함된 20페이지분량의 이시이 히사이치만화의 제목은 '이웃의 노노짱'이었다)
작품의 제목은 호호게쿄 이웃의 야마다군이지만, 야마다군만의 이야기는 아니며 야마다집안의 이야기를 다룬다.

일본영화사상 두번째의 흥행 (첫번째는 이후에 개봉한 제임스 카메룬의 '타이타닉'이었음은 모두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을 기록한 전작 '모노노케 히메' 이후의 작품이라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지브리 최초의 풀 디지탈 애니메이션으로 기록적인 제작비용과 인원을 동원하여 관심을 끈 '이웃의 야마다군'은 흥행면에서 참패를 기록했다. 픽사의 '토이 스토리'와는 달리 대부분을 2D로, 그리고 약간의 3D를 가미한 이 작품은 마치 파트텔톤의 움직이는 삽화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게한다. (평소에 좋아했던 프레드릭 벡의 파스텔톤을 참조로 하였을까?)

"이것은 해, 이것은 달"로 시작되는 오프닝으로 노노코의 목소리는 일가족을 소개한다 (이 시작부분은 '환타지아 2000'에서 '랩소디 인 블루' 도입부의 신문만화 4컷버젼으로 상상하면 되겠다)
. 할머니(시게)
와 집에서 키우는 개(포치)
, 어머니(마츠꼬)
, 자신인 노노코, 아버지(타카시)
와 오빠(노보루)
가 차례대로 등장한다. 오프닝에서 특이한 점은 19세기 우리나라로 유입되어 일본보다 오히려 활발하게 퍼져있는 화투에 등장하는 그림들과 함께 야마다가족의 캐릭터들이 아울러져 등장한다는 것이다. 전통 일본적인 그림들을 대표 한다고도 볼 수 있는 화투의 그림들을 다카하타 감독이 이용했다고 볼 수 있는데, 아무런 생각없이 화투를 아직도 애용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한번쯤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몇몇 에피소드들은 하이쿠로 불리우는 일본의 한줄짜리 시로 유명한 바쇼, 산토카, 부손등의 시인들의 하이쿠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오프닝과 연결되는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이미 '이웃의 야마다군'의 모든 주제를 이야기 하고있는데, 봅슬레드로 시작되는 아버지 어머니간의 결혼식 장면과 (봅슬레드가 얼마나 균형이 중요시 되는 스포츠인지 잠시 생각해 보면 왜 결혼식장면에 이것을 등장시켰는지 이해가 갈듯)
복숭아와 대나무에서 각각 태어나는 노보루와 노노코의 탄생장면 등은 서로 힘을 합쳐 나가면 험난한 인생도 헤쳐나갈수 있으며, 힘들어지는 자녀양육도 이로 인하여 부모님을 되돌아보게되고 자녀로 인하여 더 큰 기쁨 또한 느낄 수 있음을 설명해 준다.

백화점에서 잠들어 버린 노노짱을 잊어버리고 데려오지 못한 야마다가족의 한바탕 이야기가 다음으로 지나가고 나면 "가정의 천재"인 어머니 이야기가 시작된다. 걸어놓지도 않은 빨랫감를 두고, 갑작스런 비에 놀라 마당으로 달려가는 어머니이지만, 노보루가 방과후 아무도 없는 듯한 집에서 홀로 우동을 끓이면 몰래 숨어있다가 힘 안들이고 얻어먹는다던가, 엉망으로 되어있는 집안상태에서 남편친구의 갑작스런 방문전화에 오히려 더 어질러 버림으로써 봄청소를 하는 척하는 재치(?)
를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사무라이의 칼싸움을 보는 듯한 야마다부부 내외의 리모콘을 통한 TV채널 쟁탈전이나 주말마다 빠찡코에 주로 가는 남편이 집에 남아, 자신을 부려먹는것에 화난 마츠꼬가 오히려 빠찡코에 가버리는 에피소드 등을 통하여 이들부부의 능숙한(?)
결혼생활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지막의 탱고인지 유도인지 모를 장면에선 더 야마다부부사이가 진정 어떤 것인지 묘해진다.)

캐치볼을 통하여 부자간의 관계를 유지코자 하는 아버지의 요청을 거절한 노보루. 다음의 에피소드에서 아버지는 노보루의 식사습관 등 사사건건 참견하게 되지만 아버지의 꾸짖음도 알고보면 노보루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국에 밥을 말지말고, 밥에 국을 부어서 먹으라는 식이다.)
첫눈이 오는 기념으로 가족사진을 찍자는 아버지의 말에 가족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고 TV영화에 몰입한다. 이에 굴하지 않고 아버지는 카메라를 TV위에 설치하고 셀프타이머를 선택함으로써 결국 가족사진을 찍게되는 짧은 에피소드 뒤엔 다음의 따뜻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비가오는 전철역에서 우산을 가져오라고 전화한 남편에게 마츠꼬는 노보루와 노노코에게 우산을 가져가라 하지만 두자녀는 모두 싫다고 한다. 서로 우산가져가길 미루는 목소리에 타카시는 전화를 끊으려고 한다. 아내는 이에 더하여 고기를 사오라고 하지만, 화를내며 전화를 끊는 타카시. 그러나 근처 수퍼마켓에서 우산과 함께 고기도 사는 타카시가 집으로 향하는 저쪽 정면에선 우산을 든 아내와 노보루 노노코가 함께 마중나오고 있다. 음악을 담당한 작곡가 야노 아키코 (그녀는 극중에서 노노코의 담임인 후지와라선생의 목소리로 짧게 출연하기도 한다.)
가 직접부르는 잔잔한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쓰시가 먹고싶은 마츠꼬대신 음식을 만들겠다던 할머니는 쓰시대신 비프 스트로가노프를 만들겠다고 덤비나 결국 포기하고 음식을 주문하라고 한다.

만족스럽게 차려진 타카시의 아침상은 알고보니 노노코가 먹다남은 달걀후라이와 어제먹었던 국 그리고 노보루의 점심찬으로 남은 김이었다. 어머니는 저녁엔 직접 요리할 필요가 없어 편한 샤브샤브를 준비한다.

생강이 많이 담긴 (일본서는 생각을 많이먹으면 기억력이 나빠진다는 설이 있는 모양이다.)
국을 먹은 야마다집안은 일대혼란을 겪는다. 노보루는 가방을 잊고 학교에 가려다 다시 들어와선 파자마위에 그대로 교복을 입었음을 발견한다. 타카시는 아들과 신발을 반반씩 바꿔 신기도 하고, 노노코는 도시락을 잊어버리고 등교한다. 노노코의 도시락을 쇼핑가는 길에 가져주겠다는 할머니는 지갑을 잊고 가버리며, 어머니는 주전자를 가스렌지에 올려놓은줄로 알고 허겁지겁 되돌아 가지만 그렇지 않음을 발견한다. 배달온 소포에 찍어줄 도장둔곳을 알지못하는 마츠꼬에게 집배원아저씨는 도장이 둘째서랍 뒷쪽에 있음을 알려준다.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편에선, 입원한 친구의 병문안을 간 시게할머니에게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행동하는 친구가 결국 "그런데 너 왜 여기에 입원했니?"라는 질문에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뭔가 위독한 병에 걸렸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짧은 에피소드라고 볼수있는 "반성"편에선 라디오를 통하여 흘러나오는 말러의 교향곡1번 "거인"을 듣다가 잠든 마츠꼬가 어머니가 라디오를 끄면서 낮잠에서 깨고만다.

"소년은 늙기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편에선 공부에 있어 의지력 약한 노보루의 모습을 보여주고 "사춘기"편에선 이성과 성인잡지등에 관심을 가지는 보통의 남학생으로서의 노보루의 모습을 보여준다. 짧은 에피소드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가 "사춘기"다음으로 등장한다.

직장일로 술을 마신듯한 타카시는 귀가하자마자 아내에게 투정을 부린다. 아내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TV를 보고, 타카시는 아내가 챙겨주었으나 먹지 않겠다던 바나나를 생각없이 그냥 먹는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생활하는 듯한 타카시도 샐러리맨으로서 힘든면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단히 짧은, 하지만 대다수의 성인남자들에겐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다. 이 에피소드는 극장예고편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사용된 J.S. 바하의 곡은 미야자키나 다카하타 감독 모두가 존경하는 유리놀스테인의 최고걸작으로 꼽히는 '이야기속의 이야기'에서도 허무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 일조했던 프렐류드 8번 E단조이다.

이후에도 어릴적부터 친구사이였던 사부로 할아버지와 공원내 구획을 정하여 자리침범을 하지말라는 시게할머니의 모습이나 일본에서도 같은 전래동화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생각되는 금도끼, 은도끼를 생각게하는 깨끗한 공과 더러운 공을 함께 주는 이야기, 그리고 오토바이갱들에게 용감하게 타이르는 시게할머니 등의 에피소드가 연결된다. 마지막엔 오프닝과 마찬가지인 결혼식장면에서 축가로 케쎄라 쎄라를 야마다부부가 부르며 (일본어 번안은 다카하타 감독이 직접하였다)
피터팬의 이야기처럼 우산을 쓰고 하늘을 나는 장면으로 끝맺음을 한다.

'이웃의 야마다군'이 다카하타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감동적이며 멋진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그 이유로는 지브리의 전작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그림체에 있을 것이다. 여러개의 예고편을 통하여 혹은 포스터를 통하여 소개된 '이웃의 야마다군'의 이미지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너무 원작인 "신문만화"답다는 선입견적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처음의 기선제압도 제대로 되지 못한채, 좋아하는 작품이라면 여러번 극장을 찾아서라도 다시금 보는 일본의 매니아층에게 지속적인 세몰이도 못한 것이 패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애니메이션은 어른들이 봐서도 재미있어야 하지만, 어린이들이 스스로 찾아가며 계속 보고싶도록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며

비록 어린이들이 그 작품들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이해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점에서 '이웃의 야마다군'은 그림체의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성인층을 겨냥해서 만들어 진 것이 패인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미야자키가 작은 일본을 일찌감치 떠나, 비록 배경은 일본적인 것을 선택하더라도 스토리에 있어선 코스모폴리탄적 이야기들을 그려갔다면 다카하타는 이와 반대로 배경은 코스모폴리탄적이더라도 스토리에 있어선 언제나 관심을 일본에 두고 있었다. '이웃의 야마다군' 역시 그의 전작들과 맥을 같이하나 역시 어린이들이 하이쿠를 이해하기에도 그리고 하이쿠만큼이나 짧은 몇몇 에피소드들을 (신문 4컷만화를 보는 어린이들이 몇명이나 있을까?)
제맛대로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이 모든것에도 불구하고 '이웃의 야마다군'은 감동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보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을 더 좋아하는 분들이 많지만, "역시 다카하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토리는 무척이나 따뜻하고, 재미있으며 그러면서도 손에 땀이 날 정도로 현실감있다.

· 원제 : となりの山田君

· 감독 : 다카하타 이사오

· 제작 : 스튜디오 지브리(1999년)

· 러닝타임 : 104분

▶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주요작품

.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1968)

. 팬더, 아기팬더 (1972)

.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TV연출, 1974)

. 엄마찾아 삼만리 (TV연출, 1976)

. 빨간머리 앤 (TV연출, 1979)

. 첼리스트 고슈 (1981)

. 반딧불의 묘 (1988)

. 추억은 방울방울 (1991)

. 헤이세이 너구리 대작전 (1994)

. 이웃의 야마다군 (1999)

Joins 조성효 사이버리포터 <anicartoon@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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