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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는 필수죠, 60대 고교생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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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의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박길림(65?왼쪽)·배성자(61)씨 부부가 돋보기를 쓴 채 컴퓨터 강의를 듣고 있다. 이 부부는 4년째 한 교실에서 나란히 공부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나이 먹어서 그런지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참 힘드네요.” 65세인 박길림 학생은 아무래도 수학과 영어 과목이 제일 어렵다고 했다. 61세의 여고생 배성자씨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늘 한스러웠는데, 지금이라도 공부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웃었다.

 두 사람은 전남 목포시 산정동에 있는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부부 만학도다. 이 학교는 각각 2년 과정인 중학교에 10학급 499명, 고교에 14학급 687명이 재학 중이다. 오전반·오후반·야간반을 운영하는 학력 인정 평생교육시설이며, 재학생은 모두 20~75세의 성인들이다.

 고교 2학년인 박씨와 배씨 부부는 2009년 중학교 입학 후 4년째 한 교실에서 나란히 앉아 공부하고 있다. 이들의 집은 진도군에 있는 섬인 조도. 집에서 등교할 때는 오전 7시쯤 트럭을 타고 나서 선착장에 세워둔 후 7시 30분 여객선을 탄다. 진도군 임해면 팽목항에 도착하면 8시 5분. 이곳에서 전날 주차해 둔 승용차를 타고 학교에 가면 9시 30분쯤으로 1교시가 거의 끝날 무렵이다. 학교 수업이 끝난 뒤에는 승용차를 몰아 팽목항으로 가 오후 3시 여객선을 타고 섬으로 돌아간다. 남편 박씨는 “배에 차를 싣고 오가려면 왕복 3만8000원이 들기 때문에 섬과 육지에서 따로 차를 굴린다”고 말했다.

 바람이 부는 등 날씨가 나빠 여객선이 뜨지 않는 날과 몸이 피곤할 때는 진도읍에 있는 아들 집이나 광주에 있는 딸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섬의 집보다야 가깝지만, 두 집도 학교에서 승용차로 각각 1시간 반 가량이 걸린다.

 부인 배씨는 “섬 집에서 나올 땐 책들은 물론 옷가지까지 가지고 와야 하기 때문에 가방이 서너 개나 된다”고 말했다. 이 약 저 약을 담은 약봉지와 돋보기도 빠뜨려선 안 된다. 배씨는 어깨가 아파 수술을 받은 뒤 통원치료를 받으면서도 학교에 다녔다. 그는 어린 시절 중학교 입학 원서를 냈다가 아버지의 갑작스런 병환으로 입학을 포기했었고, 2남1녀를 기르면서 늘 못 배운 게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진도군교육청에서 근무하다 2005년 퇴임한 남편 박씨는 “어릴 때 비인가 고등공민학교를 다니다 그마저 중퇴했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각종 서류의 학력 란을 채울 때마다 마음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형편이 힘들어 교육을 받을 수 없었음에도 내 잘못처럼 느껴졌는데, 이제 그 자책감에 벗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역사와 컴퓨터 과목은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는 데도 도움이 돼 좋아한다고 했다. 올해 고교 과정을 졸업하는 그는 대학에도 진학해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려고 한다.

 한문을 가르치는 김광복(49) 교사는 “하던 일도 정리하고 쉬려고들 하는 연세에 취미생활도 미룬 채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가며 공부하는 두 분의 마음 자세가 참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김 교사는 “두 분이 어찌나 성실하고 인품이 훌륭한지 오히려 우리 교사들이 배우는 게 적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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