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언 시체가…" 노병의 6·25 생생 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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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 미 해병 1사단 소속 병사였던 리처드 릴리(사진)는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長津湖) 인근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당해 있었다. 그의 나이 스무 살이었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매서운 추위는 빗발처럼 날아드는 중공군의 총탄보다 무서웠다.

“정말 추웠다(super cold). 코에선 쉴 새 없이 콧물이 흘렀다. 총탄이 귓가를 스쳤다. 꽁꽁 얼어붙은 중공군의 시체를 여럿 봤다. 여기서 죽는구나 했다.”

 2012년 6월. 그는 살아서 62년 전 한국에서 치른 전쟁을 미국에서 영구히 기억하도록 했다. 추위와의 인연 때문일까. 그가 살고 있는 미국의 50번째 주 알래스카에서다.

 미국 지명위원회(BGN)가 지난 15일(현지시간) 알래스카 추가치 국유림의 한 봉우리(북위 60°49′47″, 서경 145°08′01″)를 ‘초신 퓨 산(Mount Chosin Few)’으로 이름 짓는 결정을 내렸다. 초신은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기억되고 있는 장진호 전투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미군은 일본에서 제작한 지도를 사용했는데 장진호가 초신(長津의 일본어 발음)으로 기록돼 있었다. 그런 만큼 산 이름은 ‘장진호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Few)’인 셈이다.

7개월의 노력 끝에 이번 명명 작업을 성사시킨 이가 82세의 한국전 참전용사(병장 전역) 리처드 릴리다. BGN 홈페이지엔 ‘한국의 초신 전투에서 싸운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적혀 있다.

 “정말 기쁘다. 내 건강이 좋지 않아 작업을 서둘렀다. 우리 주의 연방 하원의원과 주지사, 부지사, 그리고 많은 사람이 도왔다. 고맙고 흐뭇하다.” 알래스카 라스빌라에 사는 릴리는 지난 21일 밤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어려움은 없었나.

 “통상 1년은 걸린다는데 생각보다 결정이 빨리 내려졌다. 같은 중대 소속으로 초신 전투에서 살아남은 동지, 존 비슬리와 함께 추진했다. 처음엔 이름 없는 산을 찾는 게 어려웠다. 그 다음엔 서류작업이 산더미였다.”

 -왜 그렇게 힘든 일을 시작했나.

 “한국전 때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초신 전투에서만 17일간 3000여 명이 죽었다. 슬픈 일이다. 그런 전쟁의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 전쟁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참혹한 전쟁의 역사를 있는 대로 가르쳐야 한다.” [사진제공:국가기록원]

◆장진호(長津湖) 전투=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3일까지 함경남도 개마고원 장진호 부근에서 미 제1 해병사단 등 3개 대대가 중공군 7개 사단(12만 명 규모)의 포위망을 뚫고 함흥으로의 철수에 성공한 작전.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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