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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 자초하는 KTX 말 바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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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갑생
사회1부 차장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고속열차) 운영권을 민간에 주겠다는 정부 방침을 둘러싼 공방이 지루하다. 지난해 말 국토해양부가 청와대 업무보고에 이를 포함하면서 논란이 촉발된 지 벌써 6개월째다. 이렇다 할 결론도, 진전도 없다. 하지만 국토부는 여전히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며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코레일 노조, 시민단체 등 반대 측도 장외집회까지 열며 정부 정책에 강한 반감을 표출 중이다.

 이 공방은 어느 한쪽 편을 들기가 쉽지 않다. 100년간의 철도 독점 운영을 깨고 경쟁 체제로 바뀌어야 더 나은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국토부 논리는 제법 설득력이 있다. 앞서 대한항공이 독점하던 국내 항공시장에 아시아나항공이 뛰어들어 경쟁을 벌이면서 서비스가 향상된 사례가 있다.

 반면에 돈 되는 KTX를 민간에 주는 건 결과적으로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셈이라는 반대 주장도 일리가 있다. 철도를 민간에 개방하려면 적자노선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공감을 얻고 있다.

 뭐라 얘기를 하기 조심스러운 이유다.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바로 국토부의 연이은 말 바꾸기다.

 올 초만 해도 국토부는 개통 일정에 맞추려면 상반기 중에 반드시 사업자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영인력 교육, 전산시스템 구축, 열차 시운전 등 운영 준비 기간을 감안한 결과라고 했다. 정치권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왔을 때는 “법에 이미 민간 개방이 가능하게 돼 있어 국회 동의는 필요 없다”며 강행의사를 분명히 했다.

 3월 들어 갑자기 변동이 생겼다. 사업자 선정을 총선 뒤로 미룬 것이다. 국토부는 연기 이유는 밝히지 않은 채 “총선이 끝나면 바로 선정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이어 총선 직후인 4월 중순 민간사업자 공모를 위한 제안요청서를 공개했다. 그러나 핵심인 공모 일정은 명시하지 않았다. “정치권 설득과 국민 홍보를 더 한 뒤 정하겠다”는 모호한 답변뿐이었다. 상반기 마지막인 6월이 되자 KTX 민간개방은 물 건너갔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 얼마 전 권도엽 국토부 장관이 “정치권 설득작업을 해보고 안 되면 연말에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말했다. 연말에 선정해도 개통 준비에 문제 없다는 의미였다. 운영 준비를 이유로 사업자 선정의 데드라인을 상반기로 못 박았던 당초 입장이 왜 변했는지는 역시 설명이 없었다.

 운영 준비는 승객 안전과 직결된다. 충분한 기간이 보장돼야 하는 이유다. 맘대로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별 설명 없이 말을 계속 바꿔왔다.

 잦은 말 바꾸기는 불신을 자초한다. 정당성도 무너뜨린다. 한·미 FTA,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야권 인사들의 말 바꾸기 논란이 대표적이다. 꼭 말을 바꿔야 한다면 이유를 명확히 밝히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 신뢰가 살고 정책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