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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웃기면 서른 넘은거죠" 허무개그 콤비

중앙일보

입력

"아이디어라고 내놓은 게 하도 허탈해서 '피식'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허무 개그'라고 이름붙였죠. 허무해 미쳐버릴 것 같았는데 떴어요. 아! 허무해. "

지난해 12월 MBC '코미디 하우스'(토요일 오후 4시)에서 처음 선보인 허무 개그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인 개그맨 이진환(21)·손헌수(20)콤비. 사실 이들이 누군지보다 더 궁금한 건 허무 개그가 무엇인가다. 우선 하나를 보자.

이: (지나가며 큰 목소리로)심봤다.
손: (멀뚱히 선 채 표정변화 없이)도라지야.
이: 어, 그래.

다음은 광고를 패러디한 허무 개그.

이: 국물이 끝내줘요.
손: 구정물이야.
이: 어, 그래.

안 웃기면 '허무'고 웃기면 '개그'로 봐주면 되겠지만, 여기에는 세대간 웃음 코드가 완전히 달라진 상황이 녹아 있다. 콕 찍으면 바로 뜨는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층은 허무개그에 열광하고, 30대 이상은 "도대체 뭐가 웃겨"라는 반응을 보인다.

"아마 우리 개그는 서른살만 넘어도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옛날 콩트는 한 번 웃기기 위해 2분 이상 웃기는 상황을 만들잖아요. 우리는 딱 세 마디로 끝내는 거죠."

그래서 4초 정도인 첫 마디로 상황 설정을 하자마자 두번째 1초짜리 대사로 반전을 시도한다. '어, 그래'는 허무개그의 후렴구다. 실제로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도 2분 남짓이다. 짧은 시간에 10개의 개그를 하며 사람들을 웃겨야 한다. 2분을 위해 이들은 5일 동안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한다.

인기를 끌다 보니 이제 팬들이 H.O.T·god 등 인기가수를 소재로 한 허무개그와 각종 광고를 패러디한 허무개그를 인터넷에 올릴 정도다. 예를 들어 "내가 니거야?" "응" "어, 그래" 이런 식이다.

이진환과 손헌수에게 광고 제의도 들어오고 있다. 현재까지 제안을 받은 것은 빙과류 광고 두 개와 모기향 광고 하나. 하지만 두 사람은 "프로그램에서는 아주 무표정한데 아이스크림 들고 '방방' 뜨면 신비감이 사라지잖아요. 그리고 모기향은 왜 들어왔는지 모르겠어요"라며 아직 광고할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른바 신비주의 전략을 써야겠다는 것.

둘이 콤비가 된 것도 아주 우연이다. 이들 말대로 "허무하게도" 콤비가 됐다. 손헌수의 설명은 이렇다. "지난해 개그맨 캠프에 갔는데 진환이 형이 사라졌어요. 제가 형을 찾으러 간 사이 다른 사람들이 다 팀을 짜서 개그 준비를 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팀이 됐죠."

이들은 지난해 6월 열린 MBC 신인 개그맨 선발대회를 통해 개그맨의 길로 들어섰다. 허무개그 이전에는 '코미디닷컴' 등 MBC의 오락 프로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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