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팀결산 (19) - 필라델피아 필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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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이 열리기전까지만 해도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당당한 타크호스였다.

적어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뉴욕 메츠에 이은 지구 3위, 심지어는 와일드카드 레이스의 일원이 될지도 모른다는 화끈한 예상까지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필라델피아는 플로리다 말린스와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패기에 밀려 지구 최하위로 추락했으며, 그들이 올린 65승은 시카고 컵스와 함께 빅리그 최소승수였다.

◇ 1, 2선발을 팔다

의욕은 좋았다. 최고유망주 아담 이튼을 비롯한 세 명의 투수유망주를 내주며 앤디 애시비를 모셔왔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주전마무리였던 마이크 잭슨도 영입했다.

그러나 애시비는 제1선발의 중책을 이겨내지 못했고, 잭슨은 소문대로 공을 잡을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18승 35패라는 처참한 두 달이 지나가자 필리스의 에드 웨이드 단장은 시즌을 포기해버렸다.

최고의 스타 커트 실링까지 팔만큼 웨이드의 결정은 과감했다. 애시비를 넘겨주며 받은 브루스 첸은 후반기의 에이스나 다름없었고(7승4패 3.29), 실링을 통해서는 '미래의 마무리' 비센테 파디아를 얻었다.

사실 선발투수진은 최선을 다했다. 2년차 랜디 울프는 늑대가면을 쓰고 응원하는 '울프 매니아'를 탄생시켰으며, 로버트 퍼슨은 6년만에 '실패한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떼어냈다.(9승7패 3.63) 애리조나 사막에서 생명이 위독했던 오마 달 역시 필리스에 합류, 방어율을 6점대로 낮추었다.

문제는 불펜이었다. 잭슨의 기용이 불발로 끝나자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뒷문 열쇠를 웨인 고암스에게 맡겼다. 그러나 좋았던 고암스가 잠시 흔들리는 사이, 프랑코나 감독은 즉시 열쇠를 빼았아 제프 브랜틀리에게 주었다.

이미 한물간 브랜틀리(37)는 시즌이 끝날때까지 5번의 세이브 실패와 7번의 패전, 5.86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최선을(?) 다했다. 이미 시즌을 포기했던 후반기조차 고암스, 파디아와 같은 유망주들을 놔두고 브랜틀리를 고집했던 것은 자신의 명을 재촉했던 프랑코나 감독의 중대한 실수였다.

◇ 최악의 타선

필리스 타선이 메이저리그 최악의 득점력(708점)에 울어야만 했던 첫번째 이유는 1번에 뚫린 구멍 때문이었다.

그동안 필리스에는 덕 그랜빌이라는 남부럽지않은 리드오프가 있었다. 99년 바비 어브레유와 함께 팀타선을 이끌었던 그랜빌의 성적은 일년만에 이렇게 변했다. (타율-출루율-장타율 순)

99시즌 .325 - .376 - .457
00시즌 .275 - .307 - .374

'필리스의 미래' 스캇 롤렌은 일년내내 등부상에 시달렸으며, 기대했던 2루수 말론 앤더슨은 방망이를 마이너리그에 두고 온 듯 했다.

소리없이 강했던 리코 브로냐는 손목 부상으로 38경기만 뛴 채 방출당했으며, 유격수 데시 렐러포드는 앤더슨과 공동으로 최근 각팀들이 왜 그토록 미들인필더(middle-infielder)의 공격력을 중시하는 가를 설명해줬다.

가장 즐거운 소식은 팻 버렐의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데뷔였다. 당초 필리스에 버렐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그가 닉 존슨(뉴욕 양키스)와 함께 마이너리그를 양분했던 1루수이긴 했지만, 브로냐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때마침 브로냐는 고장나버렸고, 좌익수의 론 갠트는 공을 쫓아다니기에 바빴다. 풀타임의 기회가 보장되자 버렐은 본격적인 실력발휘를 했고, 18홈런-79타점의 든든한 성적을 쌓으며 신인왕 투표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 성공적이었던 2000 시즌(?)

필리스처럼 재기를 노리는 팀에겐 겉으로 드러난 성적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 그 점에서 필리스의 지난 시즌은 성공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내용이 좋았다.

브로냐, 갠트, 렐러포트, 미키 모란디니, 켄트 보텐필드, 브랜틀리, 채드 오제이, 실링, 애시비, 잭슨을 과감히 버렸으며 첸, 달, 파디야, 넬슨 피겔리아 등의 든든한 미래를 얻었다. 그리고 올해는 지미 롤린스(유격수)와 에릭 발렌트(외야수)가 합류한다.

일년만에 가장 젊은 팀으로 변신한 필리스의 올 시즌을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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