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 관심? 6월만이라도 진지하게 ‘호국영령’ 생각했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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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기호 육군 중위에게 제자가 보낸 편지

지난 6일은 현충일이었어요.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충성스러운 열정을 기리는 날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 한국전쟁에서 싸운 군인들, 오늘날에도 나라를 지키고 자유를 수호하다 유명을 달리한 경찰관·소방관들을 기억하는 날이지요.

요즘은 평화로운 시대라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여러분에게 잘 와닿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의 일상은 소소하고 평화롭게 흘러가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 국가지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로 손꼽히는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형편이랍니다. 실제로 서해상에서는 북한과 총성이 오가는 교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해 수많은 국군 장병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도 있었잖아요.

6일자 18면에 실린 기사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이 묻혀 있는 현충원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들의 유족들이 현충원 묘비 앞에 부치지 못한 편지를 모아둔다는 이야기지요. 편지를 들여다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내용이 적지 않아요. 딸의 결혼식 날, 남편의 빈자리 옆에서 홀로 혼주석을 지키고 있었다는 고(故) 전홍엽 준위의 아내가 쓴 편지, 2002년 서해교전에서 산화한 한 해군의 연인이 ‘앞으로도 영원히 너를 사랑할게’라고 적어 신랑·신부 모양의 나무 인형과 함께 놓은 쪽지 ….

가족·연인·스승·제자가 묘비 앞에 놓고 간 부치지 못한 편지들은 비에 젖고 바람에 날려 공중에 흩어져 버리기 일쑤지요. 공주대 김덕수 교수는 이런 편지와 쪽지들을 모아 사진 파일로 보관해 놓는 일을 한다고 해요. 유가족들이 남긴 글에는 상실감과 고통, 그리움은 물론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가족에 대한 자부심도 묻어난다고 합니다. 한 달에 수차례씩 현충원을 찾아 묘비 앞에 놓인 편지를 촬영하고 스캔해 모아둔 자료들을 곧 책으로 펴낼 생각이라고 해요. 김 교수는 왜 이런 일을 시작했을까요. 그는 “해마다 6월에만 반짝 호국영령에 관심을 갖는 세태가 안타깝다”며 “일부 젊은이들이 현충원을 냉전시대 수구꼴통 집단의 혼령이 묻힌 곳이라 매도할 때면 분노가 치민다”고 말했어요.

여러분은 혹시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 우리가 공기처럼, 물처럼 누리고 있는 이 자유는 사실 공짜로 주어진 게 아니랍니다. 현충원에 들어서면 볼 수 있는 수많은 묘비들, 땅속에 묻힌 많은 선조들의 희생을 통해 얻어진 것이지요. 그분들께 감사함을 갖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랍니다. 현충일에 조기도 게양하고 묵념을 하는 건 이런 감사의 표시인 셈이지요.

김 교수는 ‘6월에만’ 호국영령에 반짝 관심을 갖는 세태를 안타까워했지요. 저는 여러분께 조금 더 쉬운 부탁을 드리고 싶네요. ‘6월 한 달만이라도’ 선조들의 넋을 기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합니다.

심미향 숭의여대 강사

▶2012년 6월 6일자 중앙일보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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