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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된 그리스 위기 … 우파 제1당, 첫 관문은 연정 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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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7일(현지시간) 총선에서 제1당이 된 신민당의 안도니스 사마라스 대표가 지지자에게 손을 흔들며 선거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EU) 등이 제시한 구제금융안에 찬성하는 신민당과 사회당은 이날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162석)을 얻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을 크게 낮췄다. [아테네 AFP=연합뉴스]

그리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은 중도우파 신민당의 선거운동 중심이었다. 좌파들은 신타그마에서 150m쯤 떨어진 국립도서관 광장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리스 2차 총선 결과가 어느 정도 드러난 18일 새벽(현지시간) 두 광장 분위기는 극명하게 갈렸다. 신타그마에선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반면 도서관 광장은 대체로 조용했다. 몇몇 시리자 지지자들이 “우리도 이겼다”고 목청을 돋웠다.

 신민당 지지자들은 “유로! 유로!”를 외쳤다. 유로화를 지켰다는 기쁨의 환호성이다. 신민당 지지자인 아말리아 네그레폰티는 “이제 그리스가 유럽과 함께 전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안토니스 사마라스 신민당 대표가 지지자들의 함성 속에 자페이온 전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페이온 전당은 정당들이 총선 승리를 선포해온 자리이기도 했다. 승자를 위한 전당인 셈이다. 그는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그리스와 유럽 모두에 의미심장한 순간”이라고 선언했다. 돌연 영어로 “유럽에서 그리스 위치가 의심받지 않을 것이다. 공포가 더 이상 엄습하지 않을 것이다”고 되풀이 말했다.

 사마라스는 “국가적 단결을 위한 굳건한 토대가 마련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민당이 과반(151석)은 확보하지 못했지만 129석을 차지해 군소 정당 한 곳만 끌어들이면 연립정부 구성이 가능해서다. 사마라스 셈법대로라면 신민당은 2009년 11월 이후 2년여 만에 집권당이 된다. 올 5월 1차 총선 때도 1당이 됐지만 정부를 구성할 만큼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리스 현지 전문가들은 선거 이후 정국이 사마라스 셈법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으로 봤다. 기오르기오스 키르토스 정치평론가는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기쁨도 잠시, 사마라스가 (냉엄한) 정치 현실과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연정 구성 자체도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였다.

 실제 사마라스 앞날은 녹록하지 않다. 구제금융 협약을 지지하는 사회당이 30석 넘게 의석을 차지하기는 했다. 하지만 사회당 당수인 에반겔로스 베니젤로스 전 재무장관은 사마라스가 아닌 카를로스 포풀리오스 대통령이 구성을 주도하는 거국 내각을 바라고 있다. 심지어 선거 전날인 16일 지방 TV방송과 인터뷰에서 “(급진좌파연합)시리자가 빠진 연립정부에 참여하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사마라스가 독립당과 민주좌파(DL)를 끌어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만만찮다. 20석을 차지한 독립당은 재정긴축을 강하게 반대한다. 17석인 민주좌파는 구제금융 협약 가운데 상당부분을 재협상하자는 쪽이다. 사마라스가 파격적으로 시리자와 손잡는 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실성은 떨어진다. 시리자 대표인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이날 “연정에 참여하지 않고 제1야당으로서 구제금융 협약 반대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신민당 승리의 기쁨은 길지 않을 듯하다. 우파 신문인 카티메리니조차 “이겼으되 통치하기 어렵다”고 전망할 정도다. 그 바람에 사마라스 정권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벌써 아테네 정가에 나돌고 있다.

 사마라스는 서둘러 정책 변화를 내비쳤다. 그는 “그리스인들은 일자리 창출과 성장, 정의, 안전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이 나라가 서명한 것(구제금융 협약)을 존중한다”면서 동시에 “유럽 리더들과 경제 성장과 고통스러운 실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하겠다”고 말했다. 구제금융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설 속내를 드러내 보인 셈이다. 이번 선거 결과가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에 썩 만족스럽지 못한 까닭이다.

 EU 쪽은 사마라스를 일단 거들 모양새다. 로이터 통신은 “EU 고위 관료들이 ‘2차 구제금융이 그리스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바탕이 될 수 있다’는 요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그리스 선거의 출구조사가 발표된 직후다. 구제금융 협약의 뼈대는 유지하되 성장을 촉진하는 쪽으로 부분 수정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트로이카도 우파 정권 등장에 어느 정도 화답하고 나설 요량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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