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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판 자라’ 국내 증시 입성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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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국내 주식시장에 호주 기업이 상장한다. 호주의 여성 패스트패션(최신 유행을 바로 반영해 빠르게 제작되고 유통되는 의류) 업계 2위인 패스트퓨처브랜즈(FFB)다. 한국투자증권을 주관사로 21~22일 청약을 받아 다음 달 초 국내 증시에 입성한다.

 최근 외국계 기업에 대한 국내 투자자의 시선이 곱지 않다. 중국 섬유 생산기업인 중국고섬이 상장폐지 수순을 밟고 있어서다. 중국고섬은 상장 9개월 만인 지난해 3월 분식회계설로 거래가 정지됐다.

2010년 11월 상장한 코라오홀딩스를 빼면 3노드디지털·차이나하오란·차이나킹 등 외국계 기업의 주가는 대부분 공모가에도 못 미친다. 불투명한 회계 처리, 주주 권익에 대한 보호 부족 등 문제가 속출하며 외국계 기업은 ‘미운 오리 새끼’로 낙인찍혔다.

 “한국 기업보다 더 투명하고 엄격한 회계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마짐(Marr Jim·54·사진) FFB 사장의 자신감이다. FFB가 우려를 떨쳐내고 백조가 돼 비상할 수 있을지….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투자자 미팅을 위해 방한한 그를 최근 만났다. 마 사장은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의류 수출기업에 다니다 1991년 호주로 이민 가 성공한 한상인(韓商人)이다. 본명은 마진이다. 자기소개를 하면 호주인들이 “이름이 ‘짐’이고 성이 ‘마(Marr, 호주 현지에 있는 성의 하나)’냐?”고 자꾸 물어와 아예 이름을 바꿨다.

 -FFB는 어떤 회사인가.

 “호주판 자라(ZARA)나 H&M이라고 보면 된다. 호주에 150여 개 직영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 브랜드로는 ‘밸리걸’과 ‘템트’가 있다. 호주 전체 의류기업 가운데 시장 점유율이 1.6%로 8위다. 1년에 1000만 벌 이상을 판다. 타깃 구매층(20·30대 여성)만 감안하면 이들은 1년에 세 벌꼴로 우리 옷을 산다. 한국에도 60여 개의 밸리걸 매장이 있다.”

 -호주 기업인데 왜 국내 증시에 상장하려고 하나.

 “길게 보면 밸리걸이나 템트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 동아시아가 주요 공략 대상이다. 한국을 동아시아 진출 거점으로 삼을 계획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제3의 브랜드를 선보일 계획이다. 또 액세서리 매장을 따로 내고 기존 브랜드 매장 숫자도 늘리려고 한다. 지금 호주는 부동산 거품이 빠졌다. 임대료가 많게는 30%나 떨어졌다. 그런데 지난해 호주 의류 업계는 극심한 불황이었다. 5.8%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임대료는 싸졌는데 경쟁자는 적자로 몸을 사린다. 이런 때야말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호주에서 상장이 어려우니까 국내로 온 것 아니냐.

 “상장은 호주가 더 쉽다. 한국은 거래소와 금융감독원 등이 상장 심사를 한다. 호주는 주관 증권사가 심사해 통과하면 끝이다. 불량 기업이라면 주가 하락 등으로 시장에서 자연적으로 퇴출되는 구조다. FFB보다 더 작은 의류 회사도 이미 호주 증시에 상장됐다.”

 -중국고섬 때문인지 외국계 기업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다.

 “외국계 기업이 문제가 되는 건 회계 투명성 때문이다. FFB를 회계 처리가 불투명하다고 여겨지는 중국계 기업과 같은 카테고리로 묶어서는 곤란하다. 호주는 한국보다 회계가 더 투명하다. 호주에서는 접대비도 회계 처리가 안 될 정도다. 대가로 뒷돈을 건넨다든지 하는 건 상상도 못 한다.”

 -외국계 기업이면 주주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상법상 주주총회는 호주에서 하게 돼 있다. 하지만 연 1, 2회 정도 한국에서 예탁증권(DR)보유자 총회를 열 거다. 원활한 기업소개(IR) 활동을 위해 한국에 사무소도 열었고 한글 홈페이지도 만들었다. 재무 담당자는 한국 회계법인 출신이고. 호주와 한국과의 시차는 한 시간밖에 안 난다. 한국 주주와 의사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 없을 거다.”

 -증시 상황이 안 좋다. 상장을 미룰 수도 있나.

 “화살은 진작 시위를 떠났다. 상장을 준비하는 데 1년 넘게 걸렸다. 10월까지는 상장을 안 하면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한다. 나는 비즈니스하는 사람이다. 내가 언제까지 이런(IPO) 일에 매달릴 수는 없다. FFB의 가치를 터무니없이 평가하지만 않는다면 계획대로 상장할 것이다. 주가야 언젠가는 기업 가치만큼 받을 수 있지 않겠나.”

SPA  Special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의 줄임말. 의류기획·디자인부터 생산·유통까지 전 과정을 한 회사가 맡는 사업모델을 말한다. 백화점 등 비용이 많이 드는 유통망 대신 대형 직매장을 통해 비용을 절감해 싼값에 제품을 공급하는 게 특징이다. 또 소비자 취향을 빠르게 파악해 제품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패스트 패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스페인의 자라(ZARA)와 스웨덴 H&M, 일본 유니클로가 대표적인 SPA 브랜드다. 최근 제일모직 등 국내 브랜드도 속속 SPA 브랜드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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