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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불태워버린 ‘그것’ 괴생물체일까 내 동료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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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면

인류를 구할 여전사로 변모해가는 고생물학자를 연기한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오른쪽). [사진 싸이더스FNH]

‘더 씽’(매티스 반 헤이닌겐 주니어 감독)은 ‘괴물’(존 카펜터 감독, 1982)의 프리퀄(본편 이전의 얘기를 다룬 속편)이다. 기념비적인 SF영화의 프리퀄이라는 점에서 ‘프로메테우스’(리들리 스콧 감독, ‘에일리언’의 프리퀄)와 함께 화제를 모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고생물학자 케이트 박사(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는 빙하시대 이전부터 존재해온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 구조물과 외계생명체를 발견한 노르웨이 탐사팀의 요청을 받고 남극 기지를 방문한다.

대원들이 엄청난 걸 발견했다는 기쁨에 도취돼 파티를 벌이는 순간 얼음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이 깨어나며 기지는 공포에 휩싸인다. 외계생명체는 인간을 집어삼킨 뒤 세포를 복제해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기억까지 흡수해버리는 완벽한 모방이다. 케이트 박사는 외계생명체가 금속보형물 등 무기물까지는 복제하지 못하다는 점에 착안해 누가 진짜 인간인지, 누가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인지 가늠하려 한다.

외계생명체의 정체와 복제방식이 일찌감치 밝혀지면서 김새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진짜 공포는 고립된 장소의 대원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롯된다. 공포의 대상은 외계생명체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 그 자체에 있다는 메시지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함께 술잔을 부딪히던 오랜 동료가 거죽만 사람의 형상을 한 괴물일지 모른다는 공포감은 대원들을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는다. 자신 외에 아무도 믿지 못하며 서로를 향해 서슴없이 총구를 겨누는 모습은 불신이 빚어내는 지옥도의 한 장면이다.

'내가 방금 화염방사기로 태워버린 존재가 정말 외계괴물이었을까'라는 의문은 살아남은 이들을 더욱 미치게 만든다. 냉철한 논리와 이성의 신봉자이던 케이트 박사가 화염방사기를 매고, 사람의 얼굴이 합쳐진 끔찍한 모습의 괴생명체와 싸우는 장면은 ‘에일리언’의 리플리(시고니 위버) 등을 떠올리게 한다. 기지에서 탈출한 개가 헬기의 추격을 받으며 설원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은 ‘괴물’의 첫 장면과 이어지는 대목이다.

30년의 세월을 가로지른 작품인 만큼 CG는 분명 전작보다 정교해졌다. 그러나 '괴물'의 프리퀄이 아닌, 리메이크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설정과 전개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전작을 뛰어넘는 독창성은 다소 미흡한 편이다. 오싹한 여름철 괴수공포 영화로는 제격이다. 14일 개봉. 15세 관람가.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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