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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자 시설 옮겨라” 8000명 서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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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살인·강도죄로 두 차례에 걸쳐 22년6개월을 교도소에서 보낸 A씨(55). 지난해 11월 출소한 그는 6개월째 서울 양천구 신월7동의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이하 공단) 서울지부에서 동료 50명과 생활하고 있다. 공단은 A씨와 같이 형기를 마쳤지만 거처가 없는 출소자들에게 숙식과 사회적응을 위한 교육·상담을 제공한다.

A씨는 “가족이 있지만 직장을 구해 떳떳하게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A씨는 요즘 마음이 뒤숭숭하다. 최근 신월동·신정동 등 공단 주변 주민 대표들이 주민 8000명의 서명을 받아 지역구 의원(새누리당 김용태)에게 시설 이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A씨는 “또 범죄를 저지르려면 왜 굳이 통제받는 공단을 택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불안해한다. 인근 식당에서 만난 50대 여성은 “공단이 필요하겠지만 입소자들이 주민들을 또 해코지할까 무섭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불안감은 2010년 8월 신정동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 사건’ 이후 더 커졌다. 당시 시설 입소자였던 윤모(당시 33세)씨가 “나보다 행복해 보인다”며 주택에 침입해 흉기를 휘둘러 남편이 숨지고 부인이 다쳤다. 지난해 5월 한때 공단에서 살았던 남성이 카페 여주인을 살해하려던 사건도 있었고, 4월 술에 취한 입소자가 소동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전과자 시설’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불안감이 필요 이상으로 커졌다는 지적도 있다. 형사정책연구원 박경래 연구위원은 “공단이 범죄 발생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고 말했다. 최근 3년간 살인·강도·강간 등 5대 강력범죄 발생 건수 통계에서도 공단 서울지부가 있는 양천경찰서는 서울시내 31개 경찰서 중 14위였다. 경찰 관계자는 “주민들이 입소자 소행이라고 말한 사건들은 실제로 증거가 없거나 동네 청소년의 범행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민들의 불안감이 님비현상으로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해선 지역사회와 소통을 강화하고, 공단을 소규모로 분산할 것을 제안했다. 공단 관계자는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시행 중인 빨래 봉사활동이나 컴퓨터 활용 교육 등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가혁 기자

◆님비(NIMBY)=‘내 집 뒷마당엔 안 돼’(Not In My BackYard)의 줄임말. 핵폐기물 처리장·쓰레기 매립장처럼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남의 지역에 설치되기를 바라는 지역이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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