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 태권V부터 우뢰매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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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 슈퍼 로봇 열전
페니웨이(승채린) 지음
lennono(한상헌) 일러스트
한스미디어, 352쪽, 2만4500원

다락방에서 먼지가 켜켜이 앉은 보물상자를 찾아낸 느낌에 사로잡힐 테다. 이 책을 펼쳐 든 중년의 아저씨들은. 어린 시절의 영웅이자 로망이었던 로봇이 책장 여기저기서 총천연색으로 버티고 앉은 광경 자체만으로도 유쾌한 미소가 번질 것임에 분명하니 첫사랑과의 조우라고 할까.

‘로보트 태권V’가 미술작품으로도 재탄생했다. 조각가 김석씨의 ‘TaeKwon V 76’. 107×50×205㎝. 나무. 2009년.

 책은 ‘로보트 태권V’에서 ‘우뢰매’까지 한국 슈퍼 로봇을 최초로 정리한 로봇 애니메이션 대백과다. 한국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등장했지만 어느 순간 슬며시 사라져버린 슈퍼 로봇을 한 곳에 불러 모았다.

 개봉 연대에 따라 작품을 정리하면서 제작진과 줄거리뿐만 아니라 캐릭터 분석과 당시 사회상 등을 보여주는 신문기사 등 풍부한 자료까지 갖춰 애니메이션 마니아와 대중문화 연구자의 입에서 절로 “심봤다”가 나올 만한 책이다.

 추억을 더듬는 덕에 책장을 넘기며 슬그머니 웃음도 짓게 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함도 내려놓을 수 없다. 저자가 ‘흑(黑)역사’라 지칭한 표절과 도용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과거 때문이다. 자칫 책이 ‘한국 슈퍼 로봇 표절사’라는 별칭이라도 얻는 건 아닐까라는 우려를 버릴 수 없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저자는 그래서 이 작업이 필요했다고 강조한다. “그저 창피하니까 쉬쉬하고 있을 뿐”이라며 “한국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정리한 책이 전혀 없다시피 한 현실은 항상 나를 마음 아프게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부끄럽다고 해도 역사는 역사고, 기록으로 남겨야 잘못을 반성하고 건설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다.

 부끄러운 순간이 더 많았지만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빛나는 발군의 작품은 있었다. 표절 논란에도 ‘로보트 태권V’는 수많은 동심을 사로잡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게 했고, ‘철인 캉타우’와 ‘로보트킹’은 한국 로봇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전자인간 337’과 ‘황금날개123’는 악당에 맞서는 슈퍼히어로의 등장으로 소년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독자들이 기억의 한 조각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한국에도 이렇게 많은 로봇이 있었구나 하는 일종의 재발견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한국 로봇 만화영화의 개척자였던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 태권V’. 1976년 7월 개봉한 이 영화는 서울에서만 1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토종 슈퍼 로봇의 신화가 됐다(오른쪽 그림). [사진 한스미디어]

그렇다면 저자가 바란 소기의 성과는 충분히 달성됐다. 행복했던 동심의 순간으로 독자를 이끌었고, 시간과 기억에 묻혀 버렸던 추억의 로봇을 되살려냈으니 말이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날아라 날아 태권브이/정의로 뭉친 주먹 로보트 태권/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두 팔을 곧게 앞으로 뻗어/적진을 향해 하늘 날으면/멋지다 신난다/태권브이 만만세/무적의 우리 친구 태권브이.”

 책을 읽으며 ‘로보트 태권V’의 주제가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멀리 떠나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송가이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국 어린이의 상상력을 지켜줬던 로봇 애니메이션에 대한 찬가인 듯. 이 노래에, 이 만화에 유년기를 빚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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