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한국 세종시와 일본 소비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2면

서승욱
도쿄특파원

“박근혜 전 대표도 끝까지는 반대를 안 할 것이다. 여러분들께 자세한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지만 나한테도 느낌이란 게 있다. 박 전 대표 주변에 소통이 부족해 참모들은 박 전 대표의 진의를 잘 모른다. 앞으론 세종시 수정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정치인들의 운명이 갈릴 것이다….”

 2009년 11월 초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찾은 지인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당시는 현 정부가 전 정권에서 통과된 세종시법에 메스를 가하기 위해 막 드라이브를 걸었을 때다. 이 대통령은 충청 여론 설득을 위해 공주 출신 정운찬씨를 먼저 총리직에 앉혔다. 그러고 얼마 뒤 TV에 나와 “대선 유세에서 ‘원안대로 행정수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게 사실이다.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정말 죄송스럽다”고 국민에게 직접 사과했다. 그러곤 세종시법 수정에 박차를 가했다. 비효율을 초래하는 부처 이전 대신 세종시를 교육·과학 중심의 경제도시로 만들겠다는 새 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결국은 찬성할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느낌’은 혼자만의 기대로 끝났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자고 한 것을 가지고 제왕적이라고 한다면 저는 제왕적이라는 말을 백 번이라도 듣겠다”며 원안 고수 입장을 굽히지 않은 박 전 대표의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10개월여 동안 국민의 여론을 둘로 쪼갰던 세종시 수정 시도는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참패 뒤인 2010년 6월 관련 법안들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정권의 힘은 쭉 빠졌다.

 해묵은 세종시 이야기를 다시 꺼낸 건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비세 인상 정국과 흡사한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소비세 인상에 정치생명을 걸었다”고 공언해 왔다. 지난해 8월 취임과 동시에 ‘소비세 인상을 통한 재정 건전성 확보’를 기치로 내걸었다. 이 대통령의 ‘정운찬 카드’처럼 뚝심과 맷집이 좋은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를 소비세 인상을 총괄할 부총리에 앉혔다. 그러나 노다 총리 역시 당내 반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당내 최대 계파를 이끄는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는 “소비세 인상은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한 2009년 총선 공약 위반”이라며 요지부동이다. 지난주 두 차례에 걸친 두 사람의 담판은 결렬로 끝났다.

 세종시와의 차이는 이 대통령과 달리 노다 총리는 야당인 자민당과의 협의를 통해 마지막 승부를 보려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노다 총리는 그동안 자민당이 해임을 요구해 온 문제 각료들을 모조리 경질하는 성의까지 보였다. 노다가 공언해 온 데드라인은 정기국회 폐회일인 이달 21일이다. 자민당의 협력이라도 얻어 정치생명을 건 대업을 완수하느냐, 아니면 집권당 내부와 야당에 모두 버림받음으로써 이미 불안한 정치생명이 더 단축되느냐. 10개월을 끌어온 일본판 세종시의 결말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