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커머스 전략]도산한 닷컴기업 매입적기 [2]

중앙일보

입력

도산한 닷컴기업만 노리는 이른바 ‘닷컴벌처’(dotcom vulture)들로서는 호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자동차를 분해하듯 닷컴기업을 해체, 가능한 한 뽑아낼 수 있는 가치는 다 뽑아냈다.

대부분 변호사로 수년 동안 청산 대상인 굴뚝기업들을 해체하는 일에 종사해 온 그들이 요즘 온라인업계로 진출하고 있다. 스티브 거브스먼도 닷컴벌처다.

지난 22년 동안 기업 구조조정 부문을 전담해 온 베테랑 거브스먼은 최근 인터넷 리커버리 그룹(Internet Recovery Group)을 발족시켰다. 법률회사 스위가트&어긴의 파산 전문가 워런 어긴은 지난해 초반 『가상공간에서 본 파산과 안전투자』(가제·Bankruptcy and Secured Lending in Cyberspace)를 발간하기도 한 닷컴벌처다.

청산절차에 들어간 닷컴기업이 상당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닷컴기업 청산은 짭짤한 장사가 될 수 있다. 닷컴 ‘바겐세일’에 나선 닷컴벌처들이 으레 제시하게 마련인 정액 수수료는 수십만 달러를 호가하기도 한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증권의 전자상거래 애널리스트 제임스 제인스카이는 “자금조달이 더 어려워지고 많은 닷컴기업이 곤경에 빠지면서 닷컴 세일업은 유망 직종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곤경에 처한 기업에 투자했던 벤처캐피털리스트나 회사의 고문변호사들은 청산 전문가를 불러들이게 마련이다. 청산인이 맨 먼저 맞닥뜨리는 문제들이 있다. ‘경쟁업체와 합병할 가능성은 있는가’, ‘파산절차법에 따라 파산을 신청해야 하는가’, ‘공개시장에서 자산을 경매에 붙일 것인가’ 등이 바로 그것이다.

회사가 어려움에 직면할 경우 기업은 노련한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청산인은 기업 청산과정을 감독하고 해당 기업이 인수업체를 물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다 필요할 경우 인정사정 없는 파산절차를 이끌기도 한다. 인터넷 부문에 대한 경험까지 갖춘 청산인이라면 ‘닷컴기업의 가치는 정확히 얼마인가’라는 다소 복잡한 문제에도 쉽게 답변할 수 있다.

별 가치 없는 닷컴기업도 있다. 아무리 도산한 ‘굴뚝기업’이라도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재고품·공장·기계·인력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닷컴기업에는 유형자산보다 무형자산이 많기 때문에 자산을 수량화하기가 매우 어렵다.

무형자산으로 도메인명·특허 소프트웨어·고객명단·인력 등을 꼽을 수 있다. 직원들의 경우 회사 앞날이 불투명하다 싶으면 잽싸게 배를 갈아타기도 한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법률회사 머레이&머레이의 파산 전문변호사 스티브 오닐은 “닷컴기업에는 무형자산이 많게 마련”이라며 “청산시 맨 먼저 부닥치는 문제가 바로 그 점”이라고 말했다.

오닐은 최근 몇년 사이 침몰 중인 닷컴기업 20개를 다뤘다. 그들 기업 가운데 대부분이 지난해 봄 주가폭락 이후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기프트엠포리아의 투자자들이 지난해 여름 회사 해체를 위해 불러들인 기업청산 전문가가 바로 오닐이다.

쓰러진 닷컴기업의 인지도가 높고 시장도 상당히 넓으며 이에 눈독들인 강력한 경쟁사까지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다. 침몰 중인 닷컴기업으로서는 합병이야말로 복음이 아닐 수 없다.

황과 기프트엠포리아에는 복음도 들리지 않았다. 기프트임포리아를 매입하려는 업체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오닐은 차선책을 강구해야 했다. 법원에 파산을 신청하고 자산을 분할매각하는 것이다. 기프트엠포리아는 다른 업체가 눈독들일 만한 임대차 계약을 맺어놓고 있는데다 선 서버와 숱한 PC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청산인은 유망 신생기업으로 하여금 그런 자산을 잽싸게 낚아챌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완전히 결딴난 닷컴기업이 다시 소생하는 경우도 있다. 부닷컴이 도산한 것은 지난해 5월. 투자자들로서는 1억3500만 달러를 날리고 만 셈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