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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206> 민영화 속도 내는 산업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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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임미진 기자

“올해 안에 기업공개(IPO)를 하겠다.” “글로벌 상업투자은행(CIB)으로 거듭나겠다.” 산업은행이 요즘 분주합니다. 민영화를 위해 주식시장에 산업은행을 상장시키는 기업공개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야권에서는 “산업은행의 민영화는 적절치 않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모양입니다. 산업은행은 어떻게 출발했고, 왜 민영화를 하려는 걸까요.

1906년 설립한 ‘농공은행’이 뿌리, 54년에 발족

산업은행은 정부가 산업정책을 뒷받침하는 국책 금융회사다. 산업은행의 뿌리는 1906년 설립된 농공은행(農工銀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공은행은 농업·공업 발전을 위해 부동산 담보 대출, 농공업자 무담보 대출 등의 사업을 하던 국책 은행이었다. 1918년, 조선총독부는 전국 6개 농공은행을 합병해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을 설립한다. 산미증식계획에 자금을 대고, 채권 발행과 강제 저축 등으로 전쟁 자금을 조달하는 역할 등을 맡았다. 광복 뒤 이는 한국식산은행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산업은행 본점이 1985~2001년 입주해 있던 서울 종로 관철동 삼일빌딩. 산업금융채권을 판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 산업은행]

 산업은행이 설립된 건 54년. 같은 해 통과한 ‘한국산업은행법’에 따라 한국식산은행의 일부 자산과 인력을 승계한 산업은행이 발족한 것이다. 창립 당시 자본금은 4000만원. 서울 남대문로2가에 직원 939명으로 문을 열었다.

 산업 금융의 역할이 절실하던 때였다. 전쟁으로 국토는 폐허로 변해 있었다. 사회간접시설 확충과 빈곤 퇴치는 정부의 긴급 과제로 떠올랐다. 초대 구용서 총재는 창립 식사에서 “산업시설 부흥을 위해 외국 원조로 조성되는 대충자금 또는 부흥국채발행에 의한 부흥기금 등을 효율적으로 투자해 소기의 경제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융자 관리에 전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60년대부터 경제개발 본격화하면서 역할 커져

경제 부흥은 국가의 최대 과제였다. 이를 지원하는 산업은행은 덩달아 분주해졌다. 기간산업건설자금, 수리자금, 중소광업자금, 주택건설자금 등 정책자금을 굴렸다. 중요한 산업자금을 조달할 때 채권을 인수하거나, 다른 금융회사가 산업자금을 대출할 때 채무 보증을 서 주기도 했다.

 60년대 초, 본격적으로 경제개발계획이 실행되면서 산업자금 공급 역할은 더욱 강조됐다. 정부는 산은법을 고쳐가며 산은의 역할을 확대시켰다. 법정 자본금을 4000만원에서 1500억원으로 증액하고, 산업금융채권의 발행 한도를 늘리고, 외국 자본을 도입하거나 한국은행으로부터 긴급 차입도 할 수 있게끔 했다.

 산은이 개발금융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부는 부대 금융 업무를 관련 기관으로 옮겼다. 농업자금 업무를 농업은행(현 농협중앙회)으로, 부실채권 회수 업무를 성업공사(현 자산관리공사)로, 중소기업 자금 조달 업무를 중소기업은행으로 이관하는 식이다.

 70년대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을 추진하면서 산은의 장기산업금융 사업은 한층 강화됐다. 특히 막대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자금 조달 기능이 확충됐다. 두 차례에 걸친 산은법 개정으로 법정 자본금은 6000억원으로 확대됐고, 72년엔 담보가 부족한 기업에 자금 지원을 해줄 수 있도록 산은 내부에 신용보증기금을 설치해 신용보증 업무를 시작했다. 74년엔 국내 최초로 외화 채권을 발행해 외자를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숨가쁘게 성장한 우리 경제는 8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개방화·국제화를 추진한다. 80년대 중반까지 외화산업금융채권 발행과 차관 도입 등으로 외자를 끌어들이던 산은은 국제수지 흑자 전환을 위해 원화 산금채 발행, 예수금 확충 등 내자 조달에 힘쓰기 시작한다. 88년 신탁업 겸영 인가를 받은 뒤 89년부터 신탁 업무를 시작해 수신 기능을 크게 보강한다. 80년대 중반 이후엔 해외투자자금 지원 등 국제투·융자 업무를 본격적으로 개시했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산은은 외자 조달창구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국가신용등급과 동일한 신용등급을 가진 산은이기에 외화산금채 발행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대우그룹·기아차·현대그룹 등 다수 주요 부실기업의 주 채권은행으로 구조조정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80년대 민영화 논의 … 정부 지분 매각 나서

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대한 요구는 8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이 민간 주도로 옮겨가면서 산업은행 역시 정책금융 영역을 조금씩 축소하고 민간 금융을 성장시켰다. 이 과정에서 시중은행과 마찰을 빚기 시작한 것이다.

 90년대 말부터는 한국형 투자은행(IB·Investment Bank)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산업은행 민영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기업 금융 경험이 가장 풍부한 산업은행이 민영화를 한다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한국형 IB가 탄생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산은 민영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건 이 정권 들어서다. 2008년 6월 정부는 한국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을 발표한다. 이를 기초로 한 산업은행법 개정안이 2009년 4월 국회를 통과한다. 정부가 보유한 산은 지분을 2014년까지 매각해(1주 이상) 민영화한다는 내용이다. 2009년 하반기엔 정책금융 업무를 떼어낸 한국정책금융공사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상업금융 부문만을 분리해 민간 금융그룹인 산은금융그룹이 출범했다. 산은금융지주가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한국산업은행과 산은캐피탈·대우증권·산은자산운용·한국인프라자산운용 등이 계열사로 편입됐다.

 민영화를 목표로 한 산은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아직도 산은 민영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만만치 않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대표적인 산은 민영화 반대론자다. 그는 “영국은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제조업에 장기 투자를 해야 한다며 산업은행 모델을 배우려 한다. 민간 은행이 금융 시장에서 하지 못하는 역할을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또 하나 제기되는 우려는 자생력이다. 지금까지 산금채를 발행해 적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해 온 산은이 과연 자금을 효율적으로 조달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다. 대형 시중은행이 전국에 수천 개의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 것에 비해 산은은 전국 지점이 60여 곳에 불과하다.

 산은 측은 “수신 기반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출시한 KDB다이렉트 상품이 대표적이다. 지점이 없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계좌 개설을 신청하면 직원이 방문해 실명 확인을 거쳐 계좌를 열어준다. 대신 시중은행보다 높은 4.5%의 금리(KDB다이렉트 하이정기예금)를 제공한다. 최근 HSBC의 소매금융부문을 인수한 것도 수신 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산은 관계자는 “올해까지 전국 지점을 100곳으로 늘리고, 산은법 폐지에 대비해 산금채 의존도를 낮추는 등 체질 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금융위기·대선 … 민영화 걸림돌 만만찮아

2001년 7월부터 사용 중인 서울 여의도 본점. [사진 산업은행]

지난해 3월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산은지주 회장으로 오면서 민영화 작업에는 한층 속도가 붙었다. 강 회장은 취임 직후 우리금융지주를 인수해 산은과 동시에 민영화시키는 방안을 검토했다. 실현될 경우 총 자산규모가 500조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은행이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이 구상은 “초대형 관치를 낳을 것”이라는 반대 여론에 부닥쳐 좌초했다.

 우리금융과의 합병이 무산되면서 강 회장은 기업공개(IPO)를 통한 민영화로 방향을 틀었다. 목표는 연내 주식시장 상장이다. 최근 매각 주관사로 삼성증권과 골드먼삭스 등을 선정했다. 연내 상장해 정부 지분의 최소 10%를 주식시장에서 팔겠다는 것이다. 관건은 국회 동의다. 공기업의 정부 지분을 팔 때는 해외 채권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이 필요하다. “이미 판 채권에 대해선 정부가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급보증 동의권을 쥐고 있는 게 국회다.

 산은이 최근 여론 조성을 시작한 것도 그래서다. IPO 작업을 총괄하는 산은금융지주 주우식 수석 부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를 열고 “IPO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며 국회 협조를 호소했다.

 하지만 연내 IPO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 역할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정치권이 민영화를 적극 추진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시각이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계 금융위기나 대선 등 정치적 상황 때문에 민영화가 힘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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