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연줄 없애겠다” 민병덕의 인사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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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덕

2일 경기도 고양시 중산동의 국민은행 일산연수원에선 독특한 채용 박람회가 열렸다. 면접을 보기 위해 몰린 1200여 명은 모두 국민은행 직원이다. 이들을 면접한 심사위원은 본부 부서의 부서장이었다. 본부 부서 근무를 희망한 이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 대규모 면접을 본 것이다. 본부 부서 근무 희망자를 위한 공개 면접 행사는 금융권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민병덕 국민은행장이 인사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실험을 했다. 이른바 본부 근무를 위한 채용박람회다. 민 행장은 공모를 통해 본부 근무 지원을 받고 전체 지원자를 한자리에 모아 면접을 봤다.

 국민은행 전체 직원은 2만2000여 명이다. 하지만 ‘꿈의 발령지’로 불리는 본부 근무 인력은 1500명 안팎에 불과하다.

 본부 근무가 인기 있는 이유는 일선 영업점에서 담당하는 업무가 대출·수신 영업 등으로 다소 한정된 반면 본부에선 영업 외에 인사·재무관리·홍보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업점보다 더 많은 사내 임직원과 접촉할 수 있다는 것도 본부 근무의 장점으로 꼽힌다.

 김기수 인사 담당 본부장은 “영업 외의 업무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싶어 하는 행원, 경력 관리를 위해 다양한 업무를 맡아보고 싶어 하는 행원이나 사내에 인맥을 넓히고 싶어하는 이들이 지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홍전기 인사부장도 “대리급의 경우 자리에 비해 7, 8배 정도 많은 인원이 보통 지원을 하고 차·과장급도 지원자가 자리보다 3, 4배 정도 많은 편”이라며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인사와 관련한 불만도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연줄이 있어야 본부에 들어갈 수 있다” “학벌이 중요하다”는 등의 소문이 돌아 직원에게 소외감을 주기도 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 행장이 새로운 실험을 한 것도 이런 불만을 줄이기 위해서다. 지난달 실시한 본부부서 직무 희망자 신청 접수에서 전체 행원의 10%에 달하는 2192명이 응모했다. 이 중 1, 2차 서류 전형을 통과한 1228명이 이번 박람회에 참석해 면접을 본 것이다.

 은행 측은 이번 면접을 통과한 직원들을 자료화해 관리할 계획이다. 정기 인사 때마다 이렇게 검증된 직원들 중에서 본부 근무 직원을 뽑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공모 절차가 직원에게 자기 계발에 대한 자극도 될 것이라는 게 은행의 기대다.

김형태 인사 담당 부행장은 “가고 싶어 하는 부서장이 직접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느냐, 어떤 자세가 있느냐고 물어보니 그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려고 하지 않겠느냐”며 “회사와 직원 모두에게 경력 관리의 중요성을 깨우쳐주는 자리가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무관리부에서 근무하고 싶어 2일 박람회에 참여한 3년차 김모(29) 계장은 “입사 면접보다 더 떨리고 어려웠다”며 “부서장과 대화를 해보니 아무 준비 없이 본부에 가는 것보다 더 많이 준비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민병덕 국민은행장은 “은행 산업은 어떤 산업보다 사람이 중요한 산업이다. 인사의 투명성을 높이고 젊은 직원이 희망하는 직무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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