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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451> 해군 함정 이름 어떻게 짓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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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정용수 기자

최근 우리 해군은 많은 함정을 새로 건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함정에 고유의 이름과 번호를 붙이는 것도 적잖은 ‘일’이 되고 있습니다. 해군은 함정 자체가 부대이기 때문에 함정 명칭 명명도 ‘부대 명칭 제정 규정’에 따라야 합니다. 고속정급 이상의 함정은 해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이, 전투근무지원정은 군수참모부장이 작성하고 해군참모총장의 승인을 받아 확정됩니다. 결정된 함정 이름은 진수식 때 해군참모총장이 선포함으로써 공식화된답니다. 이번에는 해군의 함정 명칭 제정 원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통상 배 이름 끝에 ‘함(艦)’이 붙으면 군함, ‘호(號)’가 붙으면 민간 상선으로 구분한다. 군함 중에서도 만재톤수가 500t보다 큰 것은 ‘함’으로, 그보다 작은 것은 ‘정’(艇)으로 분류한다. 함은 영관급 장교가, 정은 위관급 장교가 지휘한다. 이 같은 대원칙 속에 용도와 특성, 크기에 따라 고속정·초계함·호위함·구축함·항공모함 등으로 나뉘는 게 일반적이다.

지난해 3월 24일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이지스 구축함 3번함인 ‘서애류성룡함’의 진수식이 열리고 있다. 함정은 진수식에서 함명과 흘수 번호를 부여받아 퇴역 때까지 사용한다. [사진 해군]

 누구나 이름이 있듯이 함정 역시 진수식 때 고유의 이름을 받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군 창설 초기엔 주로 외국에서 함정을 들여오면서 무원칙하게 이름을 붙여 사용했다. 그러다 함정 숫자가 많아지고 유형도 다양해지면서 원칙을 정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잠수함·구축함·상륙함 등 13개로 원칙을 나눠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근대식 군함에 최초로 부여된 함명은 ‘양무호(揚武號)’다. 1902년 고종 황제가 해군 창설을 위해 일본에 군함 구입을 의뢰했고 이듬해 일본으로부터 중고 군함을 사들여 ‘나라의 힘을 키운다’는 뜻에서 명명했다. 2년 뒤 일본 가와사키 조선소에서 새로 건조해 도입한 군함은 ‘광제호(光濟號)’라 칭했다.

 현대식 해군 창설 이후엔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순서대로 서울정·진주정 등의 이름을 붙였다. 아무런 기준이나 원칙 없이 그때그때 이름을 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해군 함정 보유가 늘어나면서 함의 유형에 따라 도시 이름과 강·산·만(灣)·해전 이름을 붙이고 있다. 해군 관계자는 “사람의 이름을 짓는 게 중요한 것처럼 함정도 진수에 앞서 많은 고심 끝에 활용 목적과 성격에 따라 명명한다”며 “우리 함정의 규모가 커지고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원칙과 기준을 정해 명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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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함정엔 영웅 이름을=우리 해군이 보유한 함정 중 가장 큰 전투함인 구축함엔 과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민들로부터 영웅으로 추앙받는 왕이나 장수 등 역사적 인물과 호국 인물의 이름을 붙인다. 전략무기로 꼽히는 잠수함은 통일신라에서 조선시대 말까지 바다에서 큰 공을 남긴 인물이나 독립운동 공헌인물 및 광복 후 국가발전에 기여한 인물의 이름을 사용한다. 장보고·이천·이종무·이순신·최무선(이상 209급), 손원일·정지(214급) 등이 대표적이다.

 또 7600t급 이지스 구축함(DDG) 1호는 ‘세종대왕’으로 명명했다. ‘꿈의 함정’이라 불리는 만큼 국민으로부터 존경받고 인지도가 가장 높은 역사적 인물인 세종대왕으로 정했다. 또 2호와 3호는 각각 ‘율곡 이이’ ‘서애 류성룡’이란 이름을 부여받았다.

 현재 우리 해군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KDX-Ⅱ(4800t)급 구축함은 해군의 영웅으로 불리는 ‘충무공 이순신’을 1번함으로 정하고, 전력화 순서에 따라 ‘문무대왕’ ‘대조영’ ‘왕건’ ‘강감찬’ ‘최영’ 등의 이름을 붙였다. 한국형 구축함인 KDX-Ⅰ(3800t) 중에서는 1번함을 ‘광개토대왕함’으로 명했고, 이어 ‘을지문덕함’ ‘양만춘함’의 이름을 붙였다.

 호위함(2300t)엔 도나 광역시, 도청 소재지 이름을 붙이고 있다. 울산·서울·충남·마산·경북·전남·제주·부산·청주 등이 대표적이다. 새로 건조하는 차기 호위함(FFX)에도 이 같은 원칙을 적용하게 된다. 해군 관계자는 “과거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구축함엔 서울이나 부산 등 주로 대도시 이름을 붙여왔다”며 “그러나 이들 함정이 퇴역하고 한국형 구축함이 만들어지면서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붙이고, 호위함에는 대도시 이름을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북한의 공격으로 폭침당한 천안함과 같은 초계함(1200t)은 시(市) 단위의 중소 도시 이름으로 명명한다. 80년대 한국형 초계함을 건조하기 전에는 초계함에 도 이름과 연안도시 이름을 사용했었다. 미국에서 인수한 2000t급 초계함이 80년대 퇴역하고 이후 한국형 초계함을 건조하면서 동해·수원·강릉·안양·포항 등 중소 도시 이름을 붙인 것이다.

◆고속정은 ‘참수리+번호’=가장 작은 규모인 고속정(148t)은 개별적인 함정 이름은 없다. 함정 전체를 ‘참수리’라고 부르고 선체번호(Hull Number)만 부여한다. ‘참수리000’라고 부르는 이유다. 참수리는 새 이름이다. 한때 제비와 백구라고도 했지만 강한 이미지를 주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지금은 참수리만 쓰고 있다. 참수리 경비정이 노후화함에 따라 해군은 유도탄고속함(PKG)을 건조하고 있다. 2007년 진수된 윤영하함이 그중 하나다. 이 함정은 비록 400t이지만 해군은 이를 ‘함’으로 분류해 개별 함명을 부여하기로 했다. 유도탄고속함은 해군 창설 이후 전투나 해전에서 귀감이 되는 인물의 명칭을 부여한다.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윤영하·한상국 등이 대표적이다.

 1만8000t급의 대형 수송함에는 독도와 같은 한국 최외곽 도서 이름을, 상륙함에는 비로봉·향로봉·성인봉과 같은 지명도가 높은 산봉우리를 적용하고 있다. 이는 영해 수호 의지를 표명함은 물론이고 섬과 같이 영원히 침몰하지 않는다는 뜻(대형 수송함)과 육지에 상륙한 이후 고지를 탈환한다는 의미를 반영하고 있다. 고속상륙정은 ‘솔개’와 같은 새 이름을 사용한다. 이밖에 군수지원함은 천지·대청·화천과 같은 담수량이 큰 호수 명칭을 쓴다. 수상함 구조함엔 평택이나 광양과 같은 공업도시 명칭을 사용한다. 잠수함 구조함은 청해진과 같이 해양력 확보와 관련된 역사적 지명을 차용한다. 배의 성격에 맞게 각각 이름을 붙인 것이다.

  또 정보함의 경우는 신천지와 신세기 등 창조와 개척의 의미를 지닌 추상명사를 사용하고 있다.

◆고유번호도 배의 이름=우리 해군은 고유명사로 된 함정명만 사용해 오다 1948년부터 추가로 아라비아 숫자의 함정 번호를 부여해 함명과 병행해 사용 중이다. 함정 유형에 따라 900(구축함·호위함) 단위, 700(초계함) 단위, 600(상륙함) 단위, 500(기뢰전함 등 특수함) 단위, 200~300(고속정) 단위의 선체번호를 사용한다. 고속정은 당초 200번대 숫자를 사용하다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300번대로 옮겨갔다. 200번대 고속정은 상당수 퇴역한 상황이다. 최근 취역한 독도함은 6111번 등 6000번대를 사용한다. 상륙함 성격이지만 급이 다른 만큼 0을 하나 더 붙인 것이다. 선체 번호에도 우리 국민들이 꺼려하는 4자는 사용하지 않는다. 또 수상함은 0자도 사용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는다.

◆다른 나라에선=한국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기준에 따라 함명을 제정해 부여하고 있다. 각국의 가장 강한 군함인 주력함의 경우 그 나라의 국왕이나 전쟁영웅, 대통령 등 상징적인 인물들의 이름을 붙이곤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 니미츠, 루스벨트, 아이젠하워 등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해군·해병대의 유명인과 더불어 전투나 주(州) 이름, 도시·만(灣)·산·물고기 등 해양생물이나 새 이름 등 유형별로 다양한 제정 기준을 만들어 놓고 있다. 미 해군은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나 이탈리아 탐험가 캐벗 등 외국인의 이름을 함정에 사용하기도 한다.

 일본은 과거에는 용이나 불사조, 학 등 신화에 나오는 날아 다니는 피조물이나 지방 명칭을 사용했다. 그러다 최근에는 잠수함엔 하루시오·구루시오 등 조류(潮流) 이름을, 구축함엔 공고 등 강이나 산 이름, 상륙함엔 구니사키 등 반도 이름을 붙인다. 또 구조함이나 기뢰전함에는 고대의 성(城)이나 해협 이름을 쓴다. 중국은 고대국가 이름, 도시 명칭, 상징적 용어 등을 함명으로 사용한다.

 프랑스는 해군제독이나 군 장성, 프랑스혁명과 관련한 이름을, 독일은 도시나 장성 이름을 함명에 붙인다. 신화의 나라인 그리스는 프로테우스, 포세이돈, 엠피트리테, 트리톤, 폰토스, 오케아노스 등 바다와 강의 신의 이름을 배에 사용한다. 이스라엘은 성경 속 인물을 사용한다.

 영국은 함정 유형별로 구축함·순양함·잠수함·상륙함을 각각 B·D·U·C 클래스로 나누고 잠수함엔 Vanguard(선봉)와 같은 정신전력 용어를, 항공모함엔 Invincible(천하무적)과 같은 단어를, 구축함엔 도시 이름, 상륙함엔 신화 이름, 기뢰전함엔 도시명을 각각 붙인다.

진수식 탯줄 끊는 것처럼 ‘선박 탄생’ 의미 … 바이킹 풍습에서 유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열린 해군 이지스 구축함 ‘세종대왕함’ 진수식에 참석해 샴페인 브레이킹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예부터 전설과 미신엔 바다와 관련된 것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안전한 항해를 위한 제식(第式) 차원에서 처녀를 용왕께 바치는 전설로부터 『심청전』이 유래하기도 했다. 이는 현대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행사가 진수식과 취역식이다. 진수(進水)는 건조를 마친 선박을 물에 처음 띄우는 행사다. 이때 샴페인 병을 뱃머리에 대고 깨뜨리는 브레이킹 의식을 한다. 주로 선주의 딸이나 부인이 대모(代母)가 돼 선박에 이름을 지어주면서 샴페인과 볼을 터뜨려 안전과 축복을 기원한다.

 진수식에선 주빈의 부인이 선박과 연결된 밧줄을 손도끼로 절단하는 순간이 하이라이트다. 우리 함정의 경우 영부인이나 국방부 장관, 해군참모총장 부인이 참석해 밧줄을 끊곤 한다. 선박의 탄생을 의미하며 어머니와 아기 사이에 연결된 탯줄을 끊는 것과 같은 의미다. 선박을 건조한 선대(船臺)라는 모태에서 바다라는 세상으로 나올 때 탯줄을 끊는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 같은 행사의 기원은 바이킹들의 진수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이킹들은 배를 진수할 때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순결한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다 이런 행사가 사라지고 액땜 차원에서 샴페인 병을 깨뜨리는 행사로 변한 것이다.

 진수식과 더불어 중요한 행사는 취역식이다. 진수한 선박이 시험항해와 훈련을 마친 뒤 임무를 시작하는 것을 취역이라 한다. 이때 삼각형으로 생긴 취역기를 함정에 게양한다. 취역기는 모든 군함이 해군의 전투세력으로 편입될 때 게양돼 일선에서 퇴역할 때까지 항상 게양되는 군함에 있어서는 중요한 상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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