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판 저축은행 사태 … 부실‘방키아’에 28조원 구제금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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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가 24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방키아 은행 본사 앞에서 돈을 돌려달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는 방키아에 190억 유로(약 28조2000억원)의 구제금융을 지원할 계획이다. [마드리드=블룸버그]

스페인판 ‘저축은행 사태’가 스페인 금융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다. 부실 저축은행을 통폐합해 더 큰 부실덩어리를 만든 게 화근이 됐다.

 외신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는 25일(현지시간) 4위 은행인 방키아에 190억 유로(약 28조2000억원)의 구제금융을 쏟아붓기로 결정했다. 스페인 역사상 최대규모의 구제금융이다. 방키아도 이날 성명을 내고 “스페인 정부, 중앙은행과 이미 19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 요청에 협의했다”고 밝혔다.

 스페인 정부는 지난 9일 이미 45억 유로(6조6500억원)를 방키아에 지원했다. 겨우 16일 만에 총 지원금액이 235억 유로로 불어난 셈이다. 당초 스페인 재무부가 은행권 전체 부실 해소에 필요하다고 봤던 150억 유로를 훌쩍 뛰어넘은 수치다. 이번 구제금융으로 스페인 정부가 보유한 방키아 지분은 45%에서 90%로 확대될 예정이다.

 부실은행 방키아는 스페인판 저축은행 사태의 산물이다. 2010년 12월 스페인 정부는 두 번째로 큰 저축은행인 카하 마드리드를 포함해 7개 저축은행을 통합해 방키아를 출범시켰다. 2000년대 초·중반 스페인 저축은행 ‘카하(caja)’는 부동산 경기 호황을 타고 덩치를 불렸다. 2003~2007년 해마다 부동산 대출을 30%씩 늘렸다. 주택담보대출을 쉽게 내줬고, 지방자치단체의 수주를 받는 지역 부동산 개발업체에도 거액을 대출해 줬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부동산 거품이 꺼졌다. 스페인 집값은 2007년 고점 대비 최대 40%까지 급락했다.

쌓여가는 미분양 주택은 고스란히 저축은행 부실로 돌아갔다. 스페인 정부는 2010년 부실 저축은행 45개를 14개로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대형 은행이 방키아다.

 하지만 통폐합 이후에도 부동산 대출 부실은 그대로였다. 방키아가 보유한 부동산 관련 대출 규모는 375억2000만 유로(56조원)로 업계 최대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부실자산이다. 방키아의 부채규모는 320억 유로(47조원)에 이른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달 낸 보고서에서 방키아를 스페인 금융안정을 저해하는 가장 큰 위험요소로 지목했다.

 지난 17일엔 방키아 ‘뱅크런설’까지 나왔다. 방키아에서 예금이 일주일 새 10억 유로(1조5000억원) 빠져나갔다는 보도였다. 스페인 정부가 즉각 이를 부인했지만 방키아를 그대로 뒀다간 스페인 금융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거란 우려가 커졌다. 스페인 정부가 막대한 규모의 구제금융 지원에 나선 것도 이런 판단 때문이다. 토비아스 블래트너 다이와캐피털마켓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방키아 사태가 잘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페인 정부는 거듭 부인하고 있지만 은행 구제를 위해 결국 유럽연합(EU)에 지원을 요청할 거란 분석도 나온다.

 한편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스페인 5개 은행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방키아, 방코포풀라르, 방크인테르의 신용등급은 BBB-에서 정크 등급인 BB+로 떨어졌다. 방카시비카는 BB로 떨어졌고, 방키아의 모회사인 BFA 신용등급은 BB-에서 B+로 깎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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