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위엄·존재감으로 고급차 시장 평정, 삼성전자 ‘뱅글 폰’ 디자인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72호 24면

2000년 이후 BMW 디자인에 혁혁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크리스 뱅글(Chris Bangle·56·사진) 총괄 디자이너다. 지금은 다른 데서 일하지만 기자와는 10여 년간 열 차례 넘게 만나며 교유(交遊)해 왔다.

현대적 BMW 디자인 완성, 크리스 뱅글

2009년 2월 돌연 BMW를 뛰쳐나와 가구ㆍ가전 디자인을 한다던 그는 지난해 3월 또 한차례 한국에서 유명세를 치렀다. 이탈리아 와인 농장을 사들인 뒤 새 디자인을 구상하던 그를 현대차가 영입한다는 일부 언론 보도였다. 현대차가 그에게 의사 타진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오보가 됐다. 이후 의외의 곳인 삼성전자에 둥지를 틀어서다. 그를 데려오려면 연봉만 수십억원을 줘야 하는데 이런 파격 대접은 현대차 경영문화와 어울리지 않았다. <중앙일보 2011년 3월 11일자 e1면>

뱅글은 삼성전자와 스마트폰 같은 특정 프로젝트를 단기간 맡는 용역 계약을 했다. 계약금은 수십억원에 달하고 사장급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세계 자동차 업계 유명 디자이너 중 몇 안 되는 미국인이다. 유럽세가 점령한 자동차 디자인 업계에 그만큼 희소성이 있다. 삼성전자는 그가 디자인한 ‘뱅글폰’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미국에서 재미를 볼 수 있다고 봤다. 위스콘신대학에서 영문학을, 캘리포니아의 명문 패서디나 아트센터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인문학 배경 덕분인지 달변이다. 그의 디자인 세계는 한마디로 이런 영향으로 깊이 있고 상식을 깨는 것이라고 요약된다. 2005년 서울을 방문해 삼성 리움 미술관에서 기자와 만났을 때다. 스포츠카 Z4 디자인에 대해 “미스터 김, 이 차의 옆면을 보면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느껴지지 않나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처음엔 썰렁한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차츰 이브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머리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이어 볼펜을 꺼내 기자의 취재수첩에 Z4의 이브 형상을 쓱쓱 그려주기도 했다. 이처럼 직관으로 이해하는 디자인보다 신비나 전설을 담아내는 디자인을 만들려 애쓰는 듯했다.

1992년 BMW에 합류한 뱅글의 대표작은 2001년 출시된 7시리즈다. BMW가 추구해 온 ‘직선의 단순미’를 파괴한 혁신 디자인이었다. 치켜 올라온 엉덩이를 연상시키는 트렁크 라인은 경쟁 모델 벤츠 S클래스보다 차체를 커 보이게 했다. 하지만 보수적이던 BMW 팬들은 간결미를 추구하는 BMW답지 않다며 ‘뱅글 버트(Butt는 엉덩이라는 뜻)’라고 혹평했다. 뱅글의 테러라는 비난까지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7시리즈에서 추구한 새로운 디자인 요소, 즉 위엄과 존재감은 대박을 냈고 세계 자동차 디자인계에도 큰 영향을 줬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