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 유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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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호 31면

부부 금실 좋기로 ‘잉꼬’를 이야기하지만 이보다 더한 새가 있다. 조류학자들이 고니 919쌍을 조사했더니 배우자가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쌍도 외도도, 이혼도 없이 오순도순 살았다고 한다. 조류의 90% 이상이 배우자에게 헌신적이지만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홍학(紅鶴) 중에는 배우자를 바꿔가며 정략적으로 혼인·이혼을 반복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놀랍게도 상대 배우자를 철저하게 이용해 자신의 생식에 도움을 받겠다는 본능적 계산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 인간과 닮은 모양이다.

결혼과 혼수라는 절차는 인간이 농경생활을 하며 한 곳에 정착하고 가부장제가 자리잡으면서 정립된 사유재산제의 결과물임이 분명하다. 조선시대에는 나이 들어서도 혼사를 치르지 못하는 남녀들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중매하고 혼수까지 마련해줘 짝을 맺어주었는데, 이를 합독(合獨)이라 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싱글 남녀의 숫자가 연 10%씩 늘고 있어 각국 정부가 다시 나서야 할 세상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1970∼80년대 강력한 산아제한정책을 펼치던 시기에 태어나 귀엽게 자란 독자(獨子)가 많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과 한 이불을 덮고 살면서 양보하며 산다는 것 자체에 전혀 익숙하지가 않다. 이럴수록 부모들의 자식 사랑에는 커트라인이 없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다할 용의를 가지고 있다. 별 여섯 개짜리 특급호텔에서의 결혼식은 물론, 평생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지낼 정도의 과도한 혼수가 실려간다. 혼수에 관한 한 부모나 자식이나 그 욕심에 한계가 없는 것은 똑같다. 많을수록 좋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몇억원은 기본이다.

과다한 혼수가 가져오는 폐해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혼수 비용이 과다할수록 자식의 결혼생활은 불행해진다. 왜 그럴까? 결혼은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기나긴 과정의 하나다. 갓 결혼한 부부는 이마를 맞대고 삶을 하나하나 그려나간다. 작은 집을 그리다가 점점 커가는 집을 그린다. 미래의 꿈을 그려넣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서 그 그림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그 모든 과정마다 행복이 놓여 있다. 그곳에 도달해 가며 얻을 수 있는 행복들이다. 부모들의 과다 혼수는 젊은 부부가 열심히 일해야 할 목표와 과정을 박탈하는 것이다. 희망이 없으니 부부싸움을 해도 그 골이 깊고 풀 방법도 요원하다. 혼수가 무거울수록 오히려 자식의 결혼이 빨리 파괴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이유다.

전통적인 독일 가정에서 챙기는 가장 중요한 혼수는 ‘세 가지 K’다. 첫째가 요리솜씨(Kohen)요, 둘째가 육아솜씨(Kind), 셋째가 신앙(Kirche)으로 평생 남에게 봉사하는 정신을 가지라는 것이다. 독일인들은 혼수란 자식과 같이 딸려 보내는 재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능력 자체라고 믿는 모양이다.

히말라야에 사는 사람들은 양(羊)을 놓아 기른다. 두 종류의 양이 있는데, 하나는 ‘내림 양’이고 또 하나는 ‘오름 양’이다. ‘내림 양’은 태어난 새끼 양이 산 위에서 내려가면서 풀을 뜯어먹는 반면, ‘오름 양’은 험한 산을 타고 위로 올라가면서 풀을 뜯어먹는다. ‘내림 양’은 자기 편한 대로 힘 안 들이고 풀을 뜯어먹으며 내려가지만 산밑에 도달할 때쯤에는 먹을 풀이 없어져 결국 비실거리다 굶어 죽는다. 반면에 산을 힘들게 거슬러 올라간 ‘오름 양’ 새끼들은 힘들고 적응하기는 어려워도 올라갈수록 먹이가 풍부해 몸은 비록 마르긴 했어도 ‘내림 양’들에 비해 건강하다. 이렇게 산을 힘들게 올라가는 새끼 양들의 뒤에선 하나같이 엄한 어미 양들이 새끼 양들을 뿔로 찔러대며 밀어올린다고 한다. 진정 자식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혜가 아닌가.



김재명 부산 출생. 중앙고성균관대 정외과 졸업.1978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전자 등에서 일했으며 전북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저서로 『광화문 징검다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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