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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 틀서 해결된 사안이지만… 개인 청구권은 대법원 판단에 동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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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판결이 나온 24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피해자 유가족 이윤재 할머니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에 피해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24일 대법원의 판결은 정부의 종래 입장과는 배치되는 내용이다. 정부는 “한·일 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해석해 왔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봤다. 정부가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 사안은 사할린 동포, 종군 위안부, 원폭 피해자다. 정부 당국자는 “피해자들과 2개 일본 기업 간의 사적 소송이어서 정부가 나설 입장은 아니다”며 “파기 환송된 2심 판결을 본 뒤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되 나서진 않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일 관계에 미칠 폭발성을 주시하고 있다. 2심에서 판결이 확정된 뒤 우리 법원이 미쓰비시 한국지사 등에 대한 재산 강제집행을 할 경우 양국 정부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이때 한·일 간 국민 감정도 격화될 수 있다. 외교부는 이날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국무조정실이 한·일 청구권 협정의 효력과 정부 대책을 담아 만든 보도자료를 제시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당시 한·일 회담 비밀문서가 공개된 뒤 고민 끝에 만든 원칙”이라며 “강제징용은 청구권 틀 속에서 해결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협정 당시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자금 산정 대상에 포함돼 있다는 설명이다. 다음은 외교부 당국자와의 일문일답.

 - 판결과 정부 입장이 배치되지 않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일본 강점의 불법성, 개인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입장 등에 대해선 정부도 같은 입장이고 의미가 크다. 하지만 판결문에도 ‘청구권 협정에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란 전제가 붙었다. 큰 맥락에선 궤를 같이한다.”

 - 한·일 청구권 협정의 근간을 부정한 것 아닌가. 재협상까지 갈 수 있지 않겠나.

 “한·일 협정의 뼈아픈 점은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시하지 않은 점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의 핵심은 손해배상이다. 협정의 위헌 여부는 각하했다.”

 - 법원은 개인청구권과 외교적 보호권(정부의 지원 역할)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했다.

 “불법 식민지배로 발생한 피해는 셀 수 없이 많다. 정부는 정부대로 징용 명부를 뽑아 내오는 등 할 일을 꾸준히 할 것이다.”

 -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르지 않겠나.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05년 정부가 세운 원칙에 따라 일관성 있게 해나갈 것이다. 강제징용은 다른 7개 항과 함께 청구권 협정안에서 해결된 문제다. 그러나 군 위안부 피해자,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 문제는 일본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 계속 일본 정부에 요구해 나가되, 한·일 협력사안에 연계하진 않는다.”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김재천(55) 일제강제동원생환자유족모임 대표는 “(대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지만 일본 기업에 대해 청구권, 한마디로 재판권이 생긴 것일 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개인이 일본 전범 기업에 징용 피해 청구를 한다 해서 과연 일본 정부에서 꿈쩍이나 하겠느냐”고 말했다. 김 대표는 결국 정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백장호(59) 일제강제동원피해자연합회 회장은 “우리 연합회 소속 징용자만 1만5000명”이라며 “강제 동원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피해 등에 대한 소송도 추가로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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