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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실업 경계선에 94만 명 … ‘고용 미스터리’ 풀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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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45만5000명 늘었다. 고용시장은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 연속으로 취업자가 40만 명을 넘어서는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실물 경기는 나빠졌는데 왜 고용시장은 ‘나 홀로’ 잘나갈까.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조차 실물과 따로 노는 고용시장에 대해 “고용 미스터리다. 나도 이유가 궁금하다”고 토로할 정도다.

 ‘고용 미스터리’에 정부도 나름대로 분석을 내놓기는 했다. 통계청은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한 중·고령 세대(45~59세, 1952~1966년생)의 은퇴가 늦어지는 데서 원인을 찾는다. 40대 후반의 경우 2001년엔 앞으로 16.5년 더 일할 걸로 기대됐지만, 2011년엔 이 수치(노동 기대여명)가 17.8년으로 늘어났다. 윤연옥 통계청 동향분석실장은 “베이비붐 세대가 노동시장에 머무는 기간이 늘면서 고령층 취업자 증가 폭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정부는 단기 일자리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남편은 전일제, 부인은 반일제로 취업하는 ‘1.5인 맞벌이’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일자리 양이 늘었지만 질은 썩 좋지 않다는 점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단시간(주 36시간 미만) 근로자 위주로 일자리가 늘지만, 전체 근로자의 총 취업시간은 크게 늘지 않았고 근로자 실질임금은 정체 상태”라며 “고용이 좋아도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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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는 공식 통계 얘기다. 정부가 고용 보조지표로 참고하는 취업 애로 계층을 뜯어보면 분위기가 꼭 좋지는 않다. 취업 애로 계층은 2010년 192만 명에서 지난해 179만5000명으로 줄기는 했다. 공식 실업자가 92만 명에서 85만5000명으로 줄어든 덕을 봤다. 하지만 지난해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 의사와 능력이 있는 사람은 58만2000명으로 2010년(58만3000명)과 비슷했다. 졸업을 했거나 앞둔 대학가의 취업준비생이 대부분 이런 경우다. 공식 통계에서 실업자 되기는 참 힘들다. 실업자가 되려면 ▶일이 없고 ▶일을 할 수 있는 상태에 있으며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해야 한다. 취업준비나 육아·가사 등으로 구직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이들도 실업자는 아니지만 실업자와 비경제활동인구의 ‘경계인’이라고 할 수 있다.

 취업자로 잡히지만 실속 없는 이들도 많다. 경기도 의정부시에 사는 김모(30)씨는 지난해 8월 지방대를 졸업하고 전단지 돌리기 같은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을 준비 중이다. 김씨 같은 ‘불완전취업자’는 취업자와 실업자의 ‘경계’에 서 있다. 주당 최소 1시간을 일하면 취업자로 간주되지만 고용의 질은 나쁠 수밖에 없다. 박기현 국회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 입법조사관은 “불황기에도 생계형 창업이 활발해 무급 가족 종사자들의 비중이 늘지만 통계는 이들을 취업자로 간주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공식 실업자 외에 ‘경계’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들까지 포괄하는 개념이 취업 애로 계층이다. 황수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공식 실업자 이외에 ‘회색지대(gray area)’에 놓여있는 사실상의 실업자들을 다양한 보조지표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2010년 1월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2009년 기준 취업 애로 계층 통계를 딱 한 번 공개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이후 관련 통계를 밝히지 않고 있다. 2010년 1~3월 취업 애로 계층이 200만 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어서 정치적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금도 이 통계를 매달 산출해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통계청·청와대 등 정부 내부적으로만 참고하고 있다.

 통계청은 취업 애로 계층 통계를 공개하면 국제비교가 가능한 공식 통계의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청와대 입장도 단호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취업 애로 계층 통계를 공개하면 언론이 나쁜 수치만 써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2013년 고용 보조지표에 대한 국제기준을 발표하는 만큼 한국도 그 기준에 따라 보조지표를 개발하겠다는 입장이다.

 201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한국 실업률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낮다. 그런데도 고용률은 34개국 중 21위다. 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 실업률 통계를 가지고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라고 지적했다.

서경호·한애란·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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