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조연출 막내가 스타영화 감독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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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이야기 끝에 박찬호 선수와 LA촬영 당시 눈에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고 했었다. 조연출 막내였던 청년이다. 길 위를 뒹굴고 무거운 것을 들고 뛰는 모습이 애처로웠지만 그의 눈빛이 살아있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하면서도 진지했고, 말수가 적었지만 눈빛이 강했다. 촬영을 마치고 너무 고생한 그 친구에게 밥 한번 사주고 싶었다. 뒷마무리하고 늦게 호텔로 돌아온 그와 술 한잔했고 빈 속에 긴장이 풀려 취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귀국 후 LA에서 찍은 광고를 편집하고 방영하느라 바쁜 나날중에 그 막내 조연출 소식이 들려왔다. “너무 힘들어서 광고판을 떠나겠다”는 말과 함께 영화판으로 새 출발을 한 것이다. 잊혀졌던 그의 이름을 다시 보게 것은 2008년 어느날 영화포스터에서였다. 추격자의 나홍진감독, 그가 바로 그 청년이었다.

추격자의 성공은 그를 스타감독 반열에 올려놓았고 2010년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선술집에서 그 진지하고 빛나는 눈빛으로 속내를 들어냈다. “형님 남자 영화 하나 만들려구요, 완전히 남자들의 이야기예요” 비장하게 이야기 하던 그의 눈빛에서 예전 LA에서 보았던 열정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황해’가 개봉되었고 영화를 보면서 비로소 그의 얘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그가 영화를 찍는 동안 쉽지 않은 감독이라고 한다. 나는 그의 젊은 시절을 보았기 때문에 조금은 짐작이 간다.

또 한명의 스타가 의외의 장면에서 나온다. 2001년 봄 국민카드의 메인 모델은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유지태였다. ‘동감’ ‘봄날은 간다’ 등 영화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준 그는 당시 라이징 스타였다. 광고의 내용은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가 여자의 부름을 받고 동시에 뛰기 시작한다. 두 남자는 인정사정 없이 뛰다가 지하철역에서 한 남자는 패스카드로 바로 통과하고 나머지 한 남자는 바에 걸려서 가지 못한다는 스토리다.(당시 패스카드는 회원수가 1000만명이 넘는 최고의 카드였다)

당연히 통과하는 남자는 유지태고 여자의 사랑도 그에게 향한다는 내용이다. 재미있는 것은 지하철 출입구를 통과하지 못한 남자다. 그 남자는 조연으로 당시에 무명의 신인배우였다. 그 역시 촬영하는 모습이 진지했고 패기도 넘쳤다. 사실 요즘도 촬영장에 나가 보면 조연 중에서 패기있는 신인을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대개 조연배우들은 조용히 촬영하고 촬영장 외진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당시 그 배우는 인사성도 밝았다.

지금도 코엑스에서 촬영이 끝난 후 큰 소리로 인사하던 그 배우의 앳된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촬영 후 편집을 한참 진행하고 있을 무렵 사건이 터졌다. 경영진 시사회를 목전에 두고 국민카드 광고가 곧 방영된다는 기사가 나온 것이다. 당장 광고대행사에 항의를 했다. 경영진도 못 본 광고가 기사화된다는 것은 지금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광고대행사로부터 뜻밖의 정보가 들어왔다. 그 조연배우의 소속사에서 언론에 흘린 것 같다는 것이었다.

바로 앳된 얼굴이 떠올랐고 크게 문제삼지 말고 조용히 넘어가게 했다. 그가 한류스타로 성장한 ‘열정의 권상우’다.

지금도 그때의 해프닝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그와 그가 속해있던 소속사의 열정의 용광로가 권상우을 만든 것이다. 오늘도 촬영장에는 많은 배우들이 나타난다. 주로 신인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어떤 꿈이 있는 것일까. 그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과 패기가 있는가를 유심히 본다. 그 속에 제2의 권상우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최근에 코엑스에서 있었던 서울 머니쇼에서 또 다른 열정과 포부를 가진사람을 보았다. 머니쇼에는 거의 모든 금융기관들이 참여해서 홍보부스를 운영했는데 KB금융관의 사회를 내가 보게 되었다.

금융계의 주요 인사들 앞에서 KB금융관을 소개하고 몇 분을 안으로 청해 KB에게 바란다는 메시지 작성을 부탁했다. 그 때 산은지주 강만수 회장의 글이 인상 깊었다.

“KB금융그룹, Korea를 Bright하게 만드는 금융그룹이 되십시오”였다. 예정에 없던 이벤트이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음에도 KB를 풀어 Korea를 Bright하게 라고 쓰신 순발력도 놀랍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몸에 밴 ‘또다른 열정’에 감동을 받았다.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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