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 91년 도의원 출마 때 건평씨가 사무장…노 정부 땐 한해 50억~100억 관급공사 따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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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건평(70)씨 주변인물이 관리해 온 것으로 알려진 ‘뭉칫돈’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돈의 출처와 규모를 밝히는 것이 검찰 수사의 초점이다.

 검찰은 일단 이 돈이 노씨를 이용해 잇속을 챙기려는 사람들에게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권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금융기관 대출과 인허가 과정에서의 청탁, 이에 따른 금품수수 등을 확인하기 위해 노씨 주변인물의 금융계좌를 샅샅이 들여다보고 있다.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노씨 주변인물의 이권사업 규모가 수백억원 이상으로 전해지면서 이 사건이 자칫 ‘대형 게이트’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번 의혹 사건의 중심에는 노씨가 실질 소유자로 알려진 ㈜KEP가 있다. 2005년 7월 설립된 이 회사는 대표 이모(56)씨, 태광실업의 박연차 회장의 측근인 정승영(62)씨, 노씨의 ‘집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고철업자 박영재(57)씨 등이 이사로 등재돼 있다. 이 가운데 자본금을 댄 사람은 이씨와 그의 동생, 정씨, D사 관계자 등 4명이다.

 이들은 모두 노씨를 중심으로 끈끈하게 연결돼 있다. 노씨는 진영중학교 12회, 박씨는 23회, 이 대표는 25회 졸업생이다. 이씨는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에 힘입어 1991년 경남도의원에 출마한 적 있다. 당시 건평씨가 선거사무장을 했다.

정씨도 KEP에 관여했다. 그는 “KEP에 투자해주면 은행이자보다 잘 주겠다는 이씨의 제안에 따라 KEP에 자본금 1억8000만원을 댔다”고 말했다.

 KEP 설립은 노씨의 ‘절친’으로 알려진 김모(71)씨가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대구 출신인 김씨는 노씨와 함께 새마을지도자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그는 전기기술자 등을 끌어들여 KEP를 설립한 뒤 박씨를 설득해 이사로 앉힌 인물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노씨는 기자의 거듭된 요청에도 김씨의 연락처 등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해 의구심을 자아냈다. 김씨는 요즘 KEP 사무소가 있는 대구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노씨와 KEP를 중심으로 한 의심쩍은 거래는 적지 않다. 노씨는 KEP 명의로 2006년 1월 태광실업 소유의 김해시 진영읍 소재 땅 5000㎡를 5억7000만원에 사들여 복토하고 용도변경해 공장건물을 지은 뒤 2007년 5월 33억원에 되팔았다.

노씨가 이 과정에서 횡령한 15억원은 이씨 관련 사업의 대가였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은 이와 관련된 KEP 관계자들의 계좌를 광범위하게 추적하다 이씨의 관련계좌 등에서 거액의 현금이 입출금된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김해 일대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에 주로 도로포장, 상하수도 같은 관급공사의 하도급을 받아 한 해 적게는 50억~70억원, 많게는 100억원 이상 공사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의 진입도로 확·포장 공사도 맡아 아직 공사 중이다. 검찰은 현 정부 들어 관급공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이씨가 노 대통령 퇴임 직후인 2008년 9월부터 산업단지 개발에 뛰어든 점에 주목한다. 이씨는 이 사업을 위해 금융권에서 70억원을 대출받고 기업·지인들로부터 돈을 빌려 김해지역 야산 3만2000㎡를 사들였다. 검찰은 이 과정에도 노씨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관계자 등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 중이다.

  검찰은 이 같은 이권개입 과정에서 오간 금품이 KEP의 계좌와 고철업자 박씨 형제 등의 계좌를 통해 세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쪽에서도 뭉칫돈이 건너왔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준명 창원지검 차장검사는 “뭉칫돈이 어디서 왔는지, 소유자가 누구인지 캐는 것이 수사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창원=황선윤·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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