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꼭꼭 숨겨라 보험 사업비 들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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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김혜미
경제부문 기자

며칠 전 프랑스계 보험사 카디프생명이 소책자를 하나 냈다. ‘알기 쉬운 보험 계약 이용가이드’란 제목의 안내서다. 10쪽 남짓한 분량에 보험 대출 받는 법, 보험 해지하는 법 등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크고 굵은 글씨에 간단한 그림을 곁들인, 평범한 상품 안내서였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이 안내서를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업계 관계자는 “보험 쪽에서 이런 책자를 따로 내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보험 시장은 이처럼 고객에게 무심한 곳이다. 지난달 변액연금 실제 수익률이 발표됐을 때 고객의 혼란이 유난히 컸던 것도 그래서다. “사업비를 이렇게 많이 떼나” “해지 환급금은 왜 이것밖에 안 되나”란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소비자도 잘못이 있다.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가입하거나 사후 관리에 무관심했다”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보험사들이 정보를 숨긴 게 아니라 고객이 챙겨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2년 전 변액연금에 가입한 뒤 받은 서류를 모조리 꺼내 봤다. 모두 150쪽에 달했다. 설계사로부터 처음 받은 가입설계서 7장, 가입 때 넘겨받은 상품설명서 6장과 보험약관 30장. 거기에 분기나 반기마다 배달되는 자산운용보고서와 보험계약 안내서를 다 합친 숫자다. 책 한 권 분량인 이 문서들 중 수수료(사업비) 내역을 설명한 건 가입설계서에 있는 한쪽이 유일했다. 그나마 깨알 같은 글씨로 씌어 있어 알아보기 어려웠다.

 사업비 내역도 충격적이다. 10년 동안은 매달 기본 보험료의 5.97%가 ‘계약체결비용’이라는 이름으로 빠져나갔다. 보험설계사 수당이다. 또 7%는 보험사의 보험료 관리·운용 비용으로 쓰인다. 한 달 기본 보험료 30만원 중 3만9000원을 보험사가 가져간다는 얘기다. 이런 내용을 딱 한 번, 그것도 가입 전 제공하는 설계서에 슬쩍 묻어둔 것이다. 많은 고객들처럼 기자도 이에 대한 설명을 들은 기억이 없다.

 이러니 10쪽 남짓한 안내서를 펴낸 정도가 칭찬받을 일이 돼 버렸다. 지난 한 해 보험업계가 고객에게 받은 보험료는 약 132조원. 이렇게 많을 돈을 낸 고객은 언제까지 숨바꼭질하듯 정보를 찾아다녀야 하는 걸까. 덩치에 걸맞은 ‘친절한 보험사’를 보고 싶다.

김혜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