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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태어나지 않는다, 다만 편집될 뿐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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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호 25면

일러스트=최종윤

서구 역사에는 한때 ‘위대한 개인의 시대’가 있었다.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시민사회가 형성되던 시기다. 그 위대한 개인을 우리는 영웅, 혹은 천재라고 불렀다. 오늘날 위대한 개인이 나오기는 참 어렵다. 일단 영웅이나 천재의 존재론적 전제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영웅이 되려면 일찍 죽어야 한다. 늙은 영웅은 없다. 젊어서 엄청난 일을 해냈지만 오래 살면서 그 위업의 영광을 다 까먹고, 초라하게 죽어간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김정운의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

천재도 영웅과 마찬가지다. 뭔가 결핍되어야 한다. 천재에게는 일단 행복이 빠져 있다. 행복한 천재는 없다. 행복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수식어다. 일반적으로 천재는 태어난다고들 한다. 유전자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영재나 신동은 태어난다. (사실 모든 부모에게 자기 자식은 영재고 신동이다.) 그러나 그가 반드시 천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의 특별한 능력이 사회적 요구와 맞물려져 빛을 발할 수 있어야 천재가 될 수 있다.

천재는 유전자부터 다르다고?
사실 나도 천재의 조건은 가지고 태어났다. ‘우기기’다. 난 어릴 때부터 우기는 데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내가 우기면 아무도 못 당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하다. 사실 내 강의도 우기는 게 대부분이다. 인문학적 주장의 대부분은 우기는 거다. 가끔 수천 명이 모인 자리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다. 그럴 경우 강의 시작 전부터 나는 기분 좋게 흥분한다. 내 스스로 먼저 흥분하고, 내 이야기에 내가 먼저 설득당하면 듣는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내 이야기에 설득당한다. ‘자신을 먼저 설득하라’는 것이 설득심리학의 핵심이다.

‘우기기’의 특별한 능력을 가진 내가 DJ(김대중 전 대통령)나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활약했던 ‘웅변의 시대’에 활동했다면 누구 못지않게 세상을 뒤흔들 수 있었을 것이다. 서울 여의도 광장이나 장충단 공원에 수십만 명을 모아놓고 연설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맥락이었다면 난 정말 대중을 뒤흔드는 천재적 데마고그(demagogue)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대중 선동의 데마고그가 설 자리는 없다. 요즘 그러면 완전 코미디다.

천재도 마찬가지다. 천재의 사회문화적 맥락이 따로 있다.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다. 내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도 그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사회문화적 필요가 존재해야 천재가 될 수 있다. 천재는 사회문화적 편집의 결과라는 뜻이다. 그 사회문화적 필요가 극대화된 시기가 바로 단선론적 발달관이 형성되던 근대 초기다. 봉건으로부터 시민사회로의 이행기에 필요한 이데올로기는 성숙한 주체, 능력 있는 개인에 대한 신념이었다. 탁월한 주체에 관한 신화가 존재해야 주체의 이데올로기가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체의 특별한 완성을 뜻하는 ‘천재’가 전제하고 있는 개념적 전제는 ‘발달’이다. 이때 천재는 일반인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발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새로운 발달의 지향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천재에게는 특별한 시대적 과제가 주어진다. ‘계몽(Aufklaerung)’이다. 발달 단계에서 처진 이들을 끌어올리는 역할이다. 이렇게 발달과 계몽(혹은 교육)의 개념적 긴장관계에서 천재는 탄생하는 것이다.

계통발생, 즉 문명의 단선론적 발달론은 미발달 종족의 계몽으로 이어지고, 개체발생의 단선론적 발달론은 근대 교육제도의 확립으로 이어진다. 이때 계몽과 교육의 근대적 과제 설정은 서구 제국주의에 도덕적 면죄부를 제공하게 된다. 그러나 헤켈의 ‘발생 반복설(recaptulation theory)’에 근거한 근대의 발달개념에서 바라보면 천재는 개념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순환론에서는 기존의 발달 단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존재인 천재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를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빠져나갈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생물학적 환원론이다. 천재는 유전자가 다르다고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환원론처럼 무책임한 설명은 없다.

생물학적 진화론이나 뇌과학을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에까지 넓히려는 최근에 유행하는 시도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그럴 듯한데 한참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사회, 문화현상이 뇌의 구조와 유전자로 환원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개인의 성격을 뇌의 구조로 환원하여 설명하는 것은 그래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범죄자의 유전자나 동성연애자의 유전자가 따로 있고 음악적·미술적 유전자나 창조적 유전자가 따로 있다는 방식의 설명을 듣고 있자면 환장한다. 도대체 인간사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뭐고, 문화적 행위의 기능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아무리 생득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도 그것이 성장 과정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않으면 가지지 않고 태어난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암의 원인에 대한 의학적 규명과 같은 경우라면 얼마든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문화적 현상을 생물학적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막힌 길이다. 아주 꽉 막힌 길이다.

‘아이돌 스타’ 모차르트의 경쟁력
‘문명화 과정’이라는 혁신적인 문화사를 썼던 노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는 모차르트라는 계몽시대의 천재를 ‘천부적 재능’이라는 생물학적 환원론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생물학적 환원론을 따르자면 천부적 재능을 보인 신동은 전부 천재로 남아야 한다는 거다. 그러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신동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던가.

천재의 시대적 맥락이 따로 있다는 것을 엘리아스는 자신의 저서 모차르트에서 아주 흥미롭게 분석한다. 문화사학자의 탁월한 심리분석이다. 물론 모차르트는 신동이었다. 신동으로서의 그의 특별한 능력은 유년기 연주 여행에서 보여주었던 뛰어난 즉흥 연주 기술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능력은 당시 웬만한 음악가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었다. 모차르트는 다른 이들에 비해 월등히 어렸기 때문에 신기했을 따름이었다. 모차르트의 연주 여행이 처음에만 인기 있고 두 번째, 세 번째 연주 요청은 극히 드물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한 번 보면 더는 재미없었다는 이야기다. 모차르트는 한때 반짝하다 사라지는 요즘의 아이돌 스타와 같은 운명이었던 거다.

신동 모차르트의 즉흥 연주 능력 또한 생득적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 엘리아스의 주장이다. 일단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는 자신의 아들을 아주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반복을 통해 기술을 익히는 도제식 훈련이었다. 모차르트가 걷기 시작할 때부터는 유럽의 유명하다는 선생은 다 만나게 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던 시민사회에서 신분 상승의 기회를 갖길 원했다. 스스로도 음악가였던 레오폴드 모차르트는 궁정 사회의 하인 신분에 불과했던 자신의 처지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원치 않았다.

물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어린 모차르트의 성격적 특징도 한몫했다. 모차르트는 누구에게나 관심 받고, 사랑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그 혹독한 훈련도 견딜 수 있었다. 죽을 때까지 애정결핍에 시달렸던 모차르트의 성격적 특징은 방탕했던 그의 아내 콘스탄체 베버와의 관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어린 신동이 나이가 들면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려서 유럽이나 미국에 유학을 떠난 한국의 어린 음악 신동들이 20대 중반만 되어도 지극히 평범한 음악가로 주저앉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악보를 달달 외우고, 작은 손가락으로 그 큰 악기를 기계처럼 다루는 연주에 관객들은 처음에만 감동할 뿐 바로 심드렁해하기 때문이다. 어린 신동 모차르트가 성인이 되어서도 천재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수공업자 예술’에서 ‘예술가의 예술’로의 전환이라는 시대사적 맥락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엘리아스의 통찰이다. 교회나 궁정의 음악가였던 바흐나 헨델의 경우만 해도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숙련된 수공업자에 불과했다. 그들의 작곡활동도 창조적 주체의 자율적 행위라기보다는 교회나 궁정의 의례에 맞춰 끊임없이 반복 생산해야 하는 수공업적 행위였을 따름이었다.

바흐의 ‘푸가(fugue)’와 같은 다양한 대위법 형식들을 잘 들여다보면 보다 쉽게 그리고 보다 효율적으로 음악을 ‘생산’하기 위해 고안된 수공업적 꼼수였을 혐의가 짙다. 물론 내 가설이다. 그래서 바흐나 헨델을 천재라고 부르기가 조금 어색한 거다. 게다가 그들은 오래 살았다. 영웅처럼 천재도 일찍 죽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쉽게 ‘천재’라고 명칭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로 부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 뜬금없는 명칭은 순전히 일본인들의 ‘옥시덴털리즘(occidentalism)’의 결과다. 독일에 그런 호칭은 없다. 그런 식으로 호칭을 붙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럼 음악의 고모는 누구고, 음악의 외삼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모차르트에 비해 15년 늦게 태어난 베토벤을 천재라고 부르기에 주저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57년을 살았으니 오래 살기도 했지만 베토벤은 작곡한 곡의 출판과 연주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었다. ‘예술가의 예술’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베토벤은 ‘사람들은 이제 나와 흥정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요구하면 그들은 지불한다’며 교만을 떨기도 했다. 그의 예술가적 교만은 청중에 대한 예술가의 권력이 허용되었던 시민사회가 성립된 이후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모차르트의 사정은 많이 달랐다. 한편으로는 궁정사회에서 인정받고 재정적 후원을 받기 위해 귀족들의 주문에 맞춰 작곡해야 하는 수공업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 형식을 바꾸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예술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이중적 삶이 모차르트를 천재로 만들었다는 것이 엘리아스의 주장이다. 물론 그의 때 이른 죽음도 이 내면화된 시대적 갈등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역사적 존재인 것이다. 어린 신동 모차르트가 역사적 천재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절대군주제에서 시민사회로의 이행이라는 사회문화적 구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안정된 사회에서 천재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안정된 사회란 발달 과정이 정형화된 사회를 뜻하기 때문이다. 천재는 한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의 이행기에 집중해 나타난다. 피카소의 천재적 예술작품은 ‘표상(representation)’이라는 복제로서의 미술이 사진이라는 과학적 도구에 의해 위협받던 시대의 산물이고, 스티브 잡스와 같은 천재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모순이 아주 우연한 개인에게 깔때기처럼 모아진 결과다.

천재는 사회문화적 변동이 역사적 개인에게 편집되어 나타나는 우연적 결과다. 따라서 자기 자식을 천재로 만들겠다고 달려들 이유가 전혀 없다. 혹시라도 천재가 되면 우연이고, 안 되면 다행이다. 천재는 일찍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오래 살면 불행해야 한다.



김정운 문화심리학 박사.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노는 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등의 저서와 방송 활동, 특강을 통해 재미와 창조의 철학을 펼치고 있다. cwkim@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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