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책과 지식] 길 걷는다는 건, 도 닦는 것과 닮았더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소울 로드
신정일 외 지음
현관욱 외 사진
청어람미디어
360쪽, 1만6000원

춘천 봄내길, 강화 둘레길, 부산 해파랑길, 남해 바래길, 안면도 노을길….

 이 책에 소개되는 다양한 길이다. ‘소울 로드’의 의미를 설명하는 ‘영혼을 치유하는 한국의 명품길’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길은 언제나 그 곳에 있었는데, 길의 의미와 소중함을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되새겨보게 한다.

 길의 한자는 ‘도(道)’. 길을 걷는 행위는 도를 닦는 일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살다 보면 복잡한 일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렇게 얽히고 설켜 풀릴 것 같지 않던 일도 그저 무심코 길을 걷다가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려나간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해보게 된다.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신정일 이사장을 비롯한 12명의 필자가 제각기 풀어놓은 ‘길 에세이’ 역시 그런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신 이사장이 소개하는 ‘소백산 자락길’을 따라가다 보면 땅 속에 스민 우리 역사의 흐름도 자연스레 전해진다. 최초의 사액 서원인 소수서원-단종 복위사건 현장-신선의 흥취가 떠도는 죽계계곡-신라 고승 의상대사와 조선 최대의 유학자 퇴계 이황이 소백산 자락에 남긴 자취를 되짚어보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길 걷기는 길 위에 축적된 역사와 문화의 흐름과 무관할 수 없는 셈이다.

 남해 바다가 고향인 박기성 ‘사람과산’ 편집위원은 고향과 엄니 생각이 날 때면 ‘강화 둘레길’을 찾는다고 했다. 장곶돈대에서부터 황산도까지의 강화도 둘레길에서 세계 4대 갯벌에 든다는 뻘바다를 보며 걷는 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한다. 또 김종대 내포문화숲길 사무처장은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서산 마애삼존불에 이르는 길을 걸으며 함께 걷는 모든 이들이 어깨에 짊어진 세상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서울 도심에는 북한산 둘레길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여행가 맹한승씨는 자신을 신선하게 충전하는 내면으로 여행하는 길이라고 했다. 이 밖에 홍천 용소계곡길, 전주 마실길, 신안 증도길, 울진 십이령길, 제주 돈내코길, 무주 강변길 등이 소개된다. 길이 좋아 걸었고 걷다가 만난 이들과 함께 걷고 또 걸으면서 얻은 느낌을 풀어놓은 이야기들이 구수하기만 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