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입, 이런 졸속 어디에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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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요즘 대학들이 택일(擇日)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가 오는 8월 16일부터 시작되는 수시 전형 일정을 이미 확정한 상황에서 다른 대학들은 서로 원서 접수를 언제까지 할지, 논술이나 적성고사는 언제 치를지 고민 중이다. 경쟁 대학과 일정이 겹치면 그 학교에 학생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머릿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는 일정을 짜려다 보니 대부분 대학들이 불과 91일 남겨둔 상황에서 전형계획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수험생이나 학부모가 답답한 나머지 각 대학의 홈페이지에 가보면 울화통이 터질 정도다. 논술 같은 시험 일정을 올린 대학은 별로 없고, 심지어 올해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에게 적용된 지난해 전형 요강만 볼 수 있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라는데 대학들의 불친절함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부지런히 발품 팔아 돌아다니는 학부모들도 헛수고했다고 말한다. 대학들이 지난 3월 입시설명회 때 말한 내용과 요즘 들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말하는 내용이 서로 다르다. 고교의 진학 담당 교사들도 “앞으로도 또 바뀔지 모르니 6~7월에 가서나 알아보라”고 말한다고 한다.

 이처럼 학생들이 고교에서 제대로 된 안내를 받지 못하고, 사설 입시업체에 쫓아가 돈 내고 컨설팅을 받아야 할 형편이라면 이런 게 완전 자율화의 모습인지 교과부에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교과부와 대교협은 입시 예고 실패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처럼 대학들이 늑장을 부리게 된 원인엔 교과부와 대교협의 뒤늦은 입시계획 확정도 한몫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대학별 정보 취합과 발표를 서둘러 지연에 따른 혼선을 줄여줘야 한다. 수험생 학부모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최소한 1년 전에는 입시계획이 확정되고, 함부로 바뀌지 않았으면 한다는 소망이다. 교과부 입시 정책 담당자나 대교협 관계자들이 내 아이가 고3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처리했다면 최소한 이런 식의 졸속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