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리스크’… 내 아내도 은퇴 준비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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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경기도 성남에 사는 주부 홍모(40)씨는 최근 자신의 명의로 연금보험에 가입했다. 남편의 수입 외엔 추가 소득원이 없는 홍씨에게 보험설계사가 “본인을 위한 노후 대비가 필요하다”고 설득했기 때문이다. 홍씨는 “평균수명대로 산다고 가정하면 내가 남편보다 10년 정도 더 산다는 말을 들으니 막막하더라. 남편과 상의해 내 노후를 보장할 수 있는 상품을 보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할머니 시기를 대비한 여성의 노후 대책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삼성생명은 16일 ‘아내에게도 은퇴 준비가 필요하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이같이 분석했다. 혼자 사는 할머니가 급증하는 데 반해 노후 자금이 충분히 마련된 경우는 많지 않다고 보고서는 소개했다.

 2010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군·구 지역에서 홀로 사는 65세 이상 노인은 모두 105만6465명. 이 중 열에 여덟(85만184명·79.7%)이 여성이다. ▶여성의 기대수명(84.1세)이 남성(77.2세)보다 7세 정도 더 긴 데다 ▶여성의 평균 결혼 연령이 약 2년 이른 것을 감안하면 여성은 남편과 사별하고 평균 9년을 혼자 살아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홀로 남은 여성을 위한 노후 자금을 충실히 설계한 가구가 거의 없다는 것. 국민연금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남편이 가입한 연금 상품의 혜택을 누리는 여성은 열 명 중 네 명(39.5%)에 불과했다. 그나마 유족연금의 수준이 30만~40만원에 그쳐 홀로 사는 데 필요한 최소 생활비(월 96만원)에 턱없이 못 미쳤다.

 김대환 보험연구원 고령화연구실장은 “가부장적 문화에선 금융 상품도 대부분 남편을 중심으로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라며 “남편이 사망한 뒤엔 수입과 연금이 모두 끊겨 생활고를 겪는 할머니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보험사는 여성의 노후 설계를 위해 연금 상품에 가입할 땐 ‘부부형 연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상품인지를 따져보라고 조언한다. 부부형 연금이란 배우자 중 한 명이 사망했을 때 남은 배우자가 연금을 이어서 받을 수 있는 상품을 가리킨다.

최근 출시되는 연금 상품은 대부분 연금 지급 시점에 ‘개인형’으로 연금을 받을 것인지, ‘부부형’으로 받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부부형 지급 방식을 선택하게 되면 보통 매달 지급되는 연금액이 10% 정도 적어진다.

 허준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월세 수익 등 일정한 수입이 없는 가정이라면 배우자 중 한 명이 먼저 사망하더라도 나머지 배우자가 생활비를 받을 수 있도록 부부형 연금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며 “연금 지급 개시 시점에 이를 ‘개인형’으로 선택하면 되돌릴 수 없는 만큼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금보험에 가입할 여력이 없는 가정이라면 배우자 사망 시 목돈을 받을 수 있는 종신형 보험이라도 가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별한 아내가 노후 생활비나 의료비로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이 된다.

 허준 연구원은 “거주하고 있는 집은 홀로 된 부인의 삶의 터전이 되므로 쉽게 처분해선 안 된다”며 “보험 소득이 없는 가정이라면 집을 담보로 역모기지론에 가입하는 것도 최후의 노후 자금 마련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환 실장은 “기대수명이 늘면서 할머니들의 의료비 지출도 급증하는 만큼 의료보험을 미리 체크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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