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베르디 1백주기… 변함없는 레퍼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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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의 서거 1백주년. 세계음악계가 추모행사로 떠들썩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몇몇 기획공연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그 기획이란 것이 대부분 흥행성이 검증된 작품을 다시 올리는 데 머무르고 있는데다, 같은 작품을 경쟁하듯 제작하는 경우도 있어 레퍼토리의 편식이 심각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베르디의 오페라 중 국내에서 가장 많이 제작, 공연된 것은 '라 트라비아타' 로 65회, 다음은 '리골레토' (28회)다. 베르디 서거 1백주년이란 흔치않은 계기에도 국내 오페라단은 여전히 이들 작품에 매달리고 있다. '라 트라비아타' 는 국립오페라단(4월)과 한국오페라단(9월)이 경연(競演)을 벌이고, '리골레토' 는 글로리아오페라단이 4월 무대에 올린다.

또 국내 무대에서 5회 공연된 '가면무도회' 를 한우리오페라단과 예술의전당이 각각 봄과 가을에 공연한다. 국내 초연작이라곤 국립오페라단이 4월 공연하는 '시몬 보카네그라' 뿐이다.

베르디의 작품 중 아직 국내 무대에 오르지 않은 작품은 숱하게 많다. '제1차 십자군의 롬바르디인'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 '스티펠리오' '레냐노의 전투' '아틸라' 등은 단 한번도 상연되지 않았고, '에르나니' '팔슈타프' '맥베스' '루이자 밀러' 등은 1회 제작에 그쳤다.

서거 1백주년을 맞아 베르디의 초기 작품의 재평가에 관심을 두고 있는 최근 세계 음악계 추세와는 달리 국내에선 극소수 작품의 재상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흥행성이 검증되지 않아 무대 제작비를 건질 수 있을지 걱정될 수는 있다.

하지만 정 걱정스럽다면 돈이 많이 드는 무대장치와 의상을 배제한 콘서트 형식의 오페라 공연도 검토해 볼 수 있다. 현재의 안이한 발상으로는 국내 오페라 무대는 늘 그 밥에 그 나물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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