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의 신문 활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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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봉 디자이너는 “신문에 실린 정론은 믿고, 인터넷이나 SNS에서 발견한 소수 의견은 존중하는 게 세상과 소통하는 나만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사진=장진영 기자]

“좋은 디자인은 시대와 호흡해야 합니다.”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의 디자인 철학은 ‘소통’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매일 오전 3~4부의 신문을 읽는 습관도 모두 소통을 위한 노력이다. 그는 “정치·경제·사회·문화·과학 등 모든 이슈를 담고 있는 신문은 나의 디자인과 사회가 소통할 수 있는 최적의 통로”라고 강조했다.

“제 첫 번째 해외 패션쇼 주제가 뭔지 아세요? 바로 ‘뉴스페이퍼(Newspaper·신문)’였어요.”

그는 1996년 영국 런던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패션쇼를 열었다. 이상봉이라는 이름을 해외에 알리는 데뷔 무대를 신문 문양을 찍어 제작한 옷으로 장식한 것이다 “난 원래 내 일에만 몰입하던 개인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정치·경제·사회와 관련된 이슈들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죠.” 그가 신문 마니아가 된 건 IMF 외환위기 때문이다. “내 평생 숙원이었던 해외 패션쇼를 앞두고 금융위기가 찾아오니 정신이 없었어요. 환율은 오르고, 기업은 도산하고. 쇼가 취소될 위기도 여러 차례 있었어요. 사회 문제, 국가 위기가 바로 내 삶에 직결된다는 걸 깨달은 거죠.”

외환위기 때 사회문제 내 삶에 직결 깨달아

이후 그는 매일 오전마다 서너 부의 신문을 정독하는 습관을 들였다. 대충 훑어 읽는 법도 없다. 1면부터 마지막 면에 실린 사설·칼럼까지 차례로 정독한 뒤에야 신문을 덮는다. “신문을 읽으며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가, 어떤 의미를 주는 일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말했다.

한글 문양부터 시작해 돌담·단청·산수화·자수 등 한국의 미(美)를 알리는 그의 디자인도 그렇게 탄생했다. “사라져 가는 우리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재해석해 세계에 알리고, 우리 젊은 세대에도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이게 디자이너 이상봉이 우리 사회에 보답하는 방법이고,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한 셈이죠.”

그는 최근 청소년·청년들을 위한 강연회에도 자주 선다.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젊은이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들려주고 있다.

“이들에게 전달할 이야기 소재도 신문에서 찾아요(웃음). 제가 경험한 세상과 요즘 젊은이들이 헤쳐나가고 있는 현실은 많이 다릅니다. 이들의 고민을 이해하고 제대로 된 비전을 제시해 주기 위해 신문기사를 많이 참고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신문 읽기를 적극 권하기도 했다. 종이 신문을 멀리하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접하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면 정보 편식으로 이어지기 쉬워요. 정보 편식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편협하게 만들고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거든요.”

보수·진보 여러 색깔 신문 읽고 생각 검증을

그는 세간에서 지적하는 ‘신문의 편향성’에 대해 뚜렷한 소신을 밝혔다. “종이 신문에 담긴 정보는 전문가 집단에 의해 여러 차례 걸러지고 검증된 객관적인 ‘팩트(fact·사실)’입니다. 신문 기사는 ‘편향적이다’라고 지적하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아니면 말고’ 식의 ‘카더라 통신’을 믿는 건 말이 안 되죠.”

정확한 정보를 걸러내는 방법도 조언했다. “인터넷에서 내 입맛에 맞는 정보만 찾는 대신, 보수와 진보 등 다양한 색깔의 신문을 비교해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고 사실을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시대와 호흡해야 합니다.”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의 디자인 철학은 ‘소통’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매일 오전 3~4부의 신문을 읽는 습관도 모두 소통을 위한 노력이다. 그는 “정치·경제·사회·문화·과학 등 모든 이슈를 담고 있는 신문은 나의 디자인과 사회가 소통할 수 있는 최적의 통로”라고 강조했다.

이상봉 디자이너에게 신문이란 ‘창(窓)’이다

창은 집안에서 세상을 내다보고 소통하는 통로이자 접점이다. “신문은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실려 있잖아요. 독자는 집에 앉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여러 사안을 신문에서 만날 수 있죠. 마치 조용한 집안에서 창 밖을 내다보는 것처럼요.”

투명한 창은 바깥 풍경을 왜곡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는 의미에서도 신문과 일맥상통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가 보급되면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너무 빨리 확산되고 있잖아요. 시간이 지난 뒤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져 봤자 당사자가 받은 상처는 회복할 길이 없어요. 정보가 넘쳐날수록 인터넷처럼 급하고 뜨거운 매체가 아니라 신문처럼 냉철하고 이성적인 미디어를 가까이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창으로 풍경을 천천히 사색하며 바라보는 것처럼요.”

글= 박형수 기자
사진=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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