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부부싸움 ‘언어적 폭력’도 범법 행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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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희 변호사

부부 사이에 용인될 수 있는 폭력, 즉 이혼당하지 않을 정도의 가정폭력은 어떤 수준일까. 밀치거나 뺨을 때리는 것? 몸을 잡아 흔들거나 목을 조르는 것? 신체적 위해는 가하지 않고 욕설만 하는 것?

 과거 법원은 부부싸움 중 감정의 격화로 인한 경미한 폭행이나 모욕, 무분별한 행동을 제지하기 위한 경미한 폭행이나 모욕 등은 이혼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판시를 한 적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부부관계에 있어 폭력의 행사는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일관된 판시를 하고 있다. 혹시 독자 여러분 중에 고개를 갸우뚱 하는 사람이 있는가. 부끄럽지만 사실 변호사인 필자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필자 역시 간혹 인간적으로 ‘내가 당사자라도 그 상황에서는 때릴 수 밖에 없었겠다’거나 ‘욕먹어도 싸다’라는 철없는 생각을 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인간적’이라는 미명 하에 내재된 필자나 대중들의 위와 같은 생각 자체가 참으로 무서운 것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즉, 세상에 감히 어느 누가 타인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며 상호간의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부부관계’에 어찌 폭력이 끼어들 수 있느냔 말이다.

 무엇보다도 최근 한국가정폭력상담소의 분석에 따르면 가정폭력의 주요 원인은 성격차이·부부간 불신과 음주·경제갈등이라 하니 이 점 주목해 볼 만하다. 요컨대 가정폭력사례 대부분이 정당한 이유는커녕 단순히 나와 성격이 다르다는 이유로, 외도에 대한 의심으로, 경제활동에 대한 불안으로 배우자를 폭행해 발생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인가. 법원이 어찌해 위와 같은 판시를 하게 됐는지 짐작해보고도 남음이 있지 않는가.

 대부분의 경우 ‘가정폭력’이라고 하면 ‘신체적 폭력’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높은데 욕설이나 모욕 등 ‘언어적 폭력’ 역시 폭력이며 실제 당하는 사람은 그 수치심과 모욕감으로 더욱 무기력해지고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기 쉽다고 하니 이 역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가정폭력범죄에 관해 별도의 특별법(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혹은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며 가정폭력을 근절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위 특별법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는 별도의 보호시설에 입소해 보호받을 수 있으며 가해자는 주거지에서 퇴거·격리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법률이나 국가기관의 보호조치보다 더욱 시급한 것은 필자를 포함한 대중 모두의 인식전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이웃은 물론 자신의 가정 내 폭력을 방관·방치할 것이 아니라, ‘가정폭력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라는 확고한 개념이 필요하다.

유유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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