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중년男 등 3000명 텐트치고 노숙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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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직장인 최누리(24·여)씨는 14일 오전 서울의 왕십리역을 찾았다. 올해 초 입사한 뒤 처음으로 월차를 썼다. 이날 오후 8시부터 판매하는 컴퓨터 게임 ‘디아블로3’ 한정판을 사기 위해서다. 최씨는 오전 11시 역 앞 광장에 도착했지만 대기표조차 받지 못했다. 최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너무 좋아했던 게임이라 회사를 쉬면서까지 왔는데 안타깝다”며 “대형마트에 예약을 하러 간다”며 발길을 돌렸다.

 이날 왕십리역 광장에는 최씨와 같은 ‘디아블로 팬’ 3000여 명이 긴 줄을 섰다. 15일 인기 롤플레잉(RPG) 게임 ‘디아블로’가 12년 만에 3편을 출시하는 것을 기념하는 전야제가 왕십리역 광장에서 열려서다. 1997년 처음 출시된 이 게임은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미 13일 저녁부터 500여 명이 왕십리역 광장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새웠다. 14일 오전부터 저녁까지 비가 쏟아졌지만 인파는 오히려 늘어났다. 돗자리를 깔고 앉은 이들은 20~30대 남성이 대부분이었다. 여대생과 중년 남성들도 종종 보였다. 안전사고를 대비해 150여 명이 넘는 경호원들이 역 주변을 에워쌌다. “긴 줄 때문에 지하철을 이용하려는 승객이 불편을 겪는다”며 왕십리역 역장이 주최 측인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에 항의를 하기도 했다. 인파 중 2000명만 임시 대기표를 받을 수 있었다. 인터넷에선 ‘디아블로’, ‘왕십리 대란’이 하루 종일 인기 검색어로 등극했다.

 디아블로 팬들을 왕십리역 광장으로 이끈 것은 전야제 행사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날 오후 8시부터 파는 ‘디아블로3 한정판’ 때문이었다. 한정판에는 디아블로3의 제작 과정이 담긴 DVD, 사운드트랙, 전편 게임이 담긴 USB 등이 들어있다. 또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특별 아이템이 포함돼 있다. 주최 측은 선착순 700명에게 디아블로 티셔츠와 마우스를 사은품으로 나눠줬다. 디아블로 팬들로선 탐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정판(9만9000원) 가격이 일반판(5만5000원)보다 비싸고, 15일이면 전국 대형마트·온라인 쇼핑몰에 대대적으로 뿌려지지만 하루라도 더 빨리 입수하려는 사람들로 왕십리역이 붐빈 것이다.

13일 오전 7시부터 줄을 서 한정판 ‘1호’를 산 조재우(22·대학생)씨는 “한정판을 2~3배 값에 되팔 거라는 사람도 있다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게임 발매 전부터 인터넷에선 최고 5배까지의 가격으로 한정판을 사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한정판을 사지 못한 일부 디아블로 팬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주최 측은 당초 “행사장을 찾은 고객들이 모두 한정판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오후부터 “준비한 물량이 4000장밖에 없어 대기표도 더 이상 나눠줄 수 없다”며 말을 바꿨다. 결국 한정판은 오후 6시 15분 판매 시작 후 얼마 안 돼 모두 팔렸다.

하선영 기자

◆디아블로=미국의 게임사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에서 1997년 출시한 롤플레잉(RPG) 게임. 마을을 구원하는 용사가 돼서 거대한 악마 메피스토·디아블로·바알 등을 물리쳐야 한다. 1997년 1편, 2000년 2편에 이어 올해 3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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