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우울증 마음 놓고 치료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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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박유미
사회부문 기자

한국사람은 마음이 아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 중 가장 긴 시간 일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가장 많다. 스트레스가 넘치면 마음에 병이 생긴다. 우울증·불면증·불안장애 등등…. 우리 애들은 어떤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원을 전전하며 경쟁에 내몰린다. 최근 여성가족부와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5~19세 청소년 10명 중 1명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성인이 되면 달라질까. 더 심한 스트레스가 기다린다. 20대 초반은 경제적 어려움과 취업난 때문에 자살을 생각한다. 30~50대는 일과 경쟁에 파묻혀 산다. 노인의 절반은 빈곤선 이하에서 산다. 노인 자살도 세계 1위다.

 어디에도 편해 보이는 세대가 없다. 고민과 스트레스가 넘치는 나라다. 최근 1년간 정신질환을 앓은 사람이 577만 명에 달한다. 국민 열 명 중 한 명이 넘는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막상 그런 환자를 찾기 힘들다. 숨어 있기 때문이다. 577만 명 중 80~90%가 가벼운 정신질환인데도 그렇다.

 ‘정신병자’, 무척 두려운 말이다. 정신과 진료기록이나 검사 결과가 있으면 경중을 따지지 않고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낙인찍히면 끝이다. 회사를 그만둬야 하고 학교에서 왕따당한다. 가족의 눈초리도 곱지 않다. 보험에 가입할 수도 없고 의사·약사 등 전문직이 되는 데도 제한이 있다. G20 정상회의를 주최한 나라에서 77가지 법으로 낙인을 찍고 있다.

 대구교육청이 지난해 430개 초·중·고 정서행동발달 선별검사를 했는데, 학부모의 8%가 검사에 동의하지 않았다. 검사 결과 문제가 있어 치료비를 지원해 준다고 해도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부모를 덮어놓고 손가락질할 수만은 없다. 내 자식에게 주홍글씨가 찍히는 것을 반길 리 없다.

 경증 환자에게서 정신병 딱지를 뗀다는 보건복지부의 방침(본지 5월 10일자 1, 8면)은 환영할 만하다. 환청·망각 같은 심한 정신병적 증상만을 정신질환자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기회를 놓쳤거나 때가 늦었음을 한탄함)이지만 현명한 판단을 했다.

 복지부 혼자서는 안 된다. 77가지 법률을 갖고 있는 정부 부처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전국에 83개밖에 안 되는 정신보건센터를 더 늘리고 인식 개선 캠페인을 해야 한다. 돈이 필요하면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드러내놓고 정신과를 찾을 수 있는 사회로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