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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보다 성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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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셉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얼마 전 열렸던 국제통화기금(IMF) 연례총회에 참석한 각국 재무장관부터 금융기관 수장에 이르는 경제 지도자들은 흘러간 주문만 반복해 읊어댔다. 재정위기 국가들은 재정을 정상으로 회복시켜야 하며,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를 줄여야 하며, 과감한 구조개혁과 성장을 촉진해야 한다는 소리 말이다. “국가 신용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소리도 반복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문대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제가 불황으로 나가고 있는데 어떻게 신용을 회복할 수 있단 말인가. 긴축으로 총수요가 추가로 줄고 생산과 취업자 수가 더 줄 게 분명한 상황에서 어떻게 성장률을 회복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세계경제 상황은 이렇다. 금융시장이 불안정하고 부실자산이 계속 나타나고 있으며 실업률 상승으로 임금과 수입, 그리고 소비와 총수요가 연쇄적으로 줄고 있다. 주택 소유 비율 감소로-특히 젊은 미국인들이 다시 부모 집에 얹혀사는 비율이 늘고 있다-주택 가격이 내리고 있으며 주택담보 대출자들이 빚을 못 갚아 집에서 쫓겨나는 비율이 늘고 있다. 균형 예산을 갖춘 나라들도 세금 징수가 감소해 어쩔 수 없이 재정 지출을 삭감하고 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요즘 조심성 없이 이런 상황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이를 타파할 대안이 있다. 독일과 같이 재정 여유가 있는 나라가 앞장서서 성장률을 높여줄 장기 투자를 함으로써 다른 나라에 긍정적 효과가 넘쳐 흐르게 하는 것이다. 세수와 지출을 동시에 늘리는 확장 균형 정책이 경제성장을 자극한다는 사실은 오래전에 이미 증명됐다. 프로그램만 잘 설계하면(교육예산에 특히 신경 쓰면) 국내총생산(GDP)과 취업률을 두드러지게 개선할 것이다.

 유럽 전체적으로는 재정 상태가 나쁘지 않다. GDP 대비 채무 비율은 미국보다 좋다. 유럽에는 현금에 굶주린 경제계에 필요한 투자를 해주는 유럽투자은행(EIB) 같은 금융기관이 있다. EIB는 대출을 늘려야 한다. 중소기업을 지원할 자금도 확대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모든 종류의 업종에서 일자리를 늘려준다. 은행들이 대출을 줄이면 중소기업들이 특히 큰 충격을 받기에 이러한 지원은 아주 중요하다.

 유럽이 긴축이라는 외곬에 빠지고 있는 것은 문제의 맥을 잘못 짚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재정 과다지출이 문제였지만 스페인과 아일랜드는 흑자 재정이었으며 재정위기 이전에 GDP 대비 국가채무를 줄여왔다. 재정을 신중하게 운영하라는 충고는 본질에서 벗어난 이야기다. 예산 긴축을 포함해 이런 충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역효과만 낳을 뿐이다. 전 세계 어떤 경제대국도 긴축을 통해 경제를 되살린 적은 없다. 유럽은 현재 세계 최대의 경제연합이다.

 긴축의 결과 사회의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인 인적자산이 버려지거나 파괴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오랫동안 직업도 없이 곤궁 속에서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 어떤 유럽 국가에서는 청년 실업률이 50%를 넘고 있다. 이들이 마침내 직업을 갖게 된다 해도 임금은 형편없이 낮을 것이다. 통상 청년기는 직업적 숙련도를 키워가는 시기인데 현재는 위축되는 시기가 되고 있다.

 많은 산업은 지진·홍수·태풍·허리케인·지진해일 같은 자연재해에 공격당하기 쉽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재해는 이보다 훨씬 비극적이다. 유럽은 현재 이런 인위적 재해를 겪고 있다. 유럽 지도자들은 과거의 교훈을 애써 무시해선 안 된다. 그러면 죄를 짓는 것이다. 유럽에서 특히 가난한 계층과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불필요한 것이다. 다행히도 대안이 있다. 이를 자꾸 연기할수록 비용이 더 많이 들 것이며, 현재 유럽은 시간이 없다.

조셉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